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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한다는 것은 다 핑계죠” 초긍정 마인드의 장애 극복 시각장애1급 김병길 원장
글 : 오성렬 /
2019.03.01 16:59:0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못 한다는 것은 다 핑계죠”

초긍정 마인드의 장애 극복

시각장애1급 김병길 원장

글 오성렬(主幹)

 

 

 

나운동 소재 제일경락안마원의 김병길 원장(50). 그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본래 잘 생긴 외모지만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더욱 멋져 보이는 그는 동병상련의 장애를 가진 이들의 자활 및 복지 증진과 사회봉사를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열정으로 주위의 칭송이 끊이지 않는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그가 태어난 곳은 정읍의 시골 어느 마을,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유년시절이었다. 다만 어머니 뱃속에 나온 이후 뭔가를 명확히 본 기억이 없으니 이미 세상은 그에게 어둠뿐이었던, 선천적 시각장애였던 것이다. 보이지 않으니 동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어 언제나 외톨이였던 그는 친구들과 떠들고 노는 것이 너무도 부럽고 서글퍼 그렇게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초등학교 진학 무렵 혹시 만에 하나라도 시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하여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팔고 빚을 내어서라도 눈 수술을 하겠다는 결심했다. 그렇게 해야만 나중에 원이 없을 것 같았다. 이후 광주 조선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고 회복 되면 바로 초등학교 입학도 할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풀어 경과를 지켜보고 있던 중 그 무슨 운명인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하고 만다. 

 


 

 

그의 동네에는 인도와 차도를 구분 짓는 경계에 쇠말뚝을 설치한 곳이 있었는데 군데군데 벌어진 부분이 있어 철사로 대충 이어 쇠꼬챙이처럼 삐죽삐죽 나와 있는 부분이 있었다. 눈 수술 후 이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던 어느 날, 그 쇠말뚝을 잡고서 동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 장난이었겠지만 누군가 달려와 뒤통수를 힘껏 때리고 도망을 갔고 그 힘에 밀려 머리가 앞으로 숙여지면서 수술한 눈이 그 날카로운 철사에 찔리고 만 것이다. 그는 급히 응급실에 실려 갔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학업


또 한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의 회복은 절망적이었다. 실낱같았던 희망마저 무참해져버린 것이다. 그러는 사이 진학은 1년 더 늦어졌고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다는 것에 가족들의 고통도 커져만 갔다. 일반학교이다 보니 시각장애에 대한 편견이 생각보다 심해 저능아로 취급받는 것 또한 가중되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2학년 무렵 익산의 전북맹아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처지가 같은 학생들과 공부를 하게 되니 예전보다 마음이 가벼웠고, 무엇보다 동병상련의 어려움을 나누는 가운데 사물을 알아내고 글씨를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워낙 외톨이로 지내던 시기 책만이 그의 유일한 벗이었던 터라 그로인해 비록 보이지는 않아도 독서로써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되고 상상력이 풍부해져 대인관계 및 인격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컴퓨터 활용 능력도 키웠다. 자판도, 모니터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자판을 두드리면 음성으로 변환되는 시스템이 개발되어 있어 이의 숙달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되었다. 또한 실생활에 필요한 전기제품들을 손수 설치할 수 있는 능력도 키우는 가운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 용어도 있듯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내겠다는 굳은 의지와 신조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중등과정 때 학급 반장을 하다가 3학년 때 학생회장을 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통솔력을 배웠고 ‘역지사지’의 의미도 깨우치게 되거니와 고등부 3학년 때는 친교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열정적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다른 임원들보다 더 안정적이면서 민주적이고 체계적 업무처리를 습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기 위해 사이버대학을 이수하는 동안은 혼자서 서울을 오갈 정도로 집념이 남달랐던 그는 목표였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 안마사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웃사랑 실천


그는 1991년도 고등부 졸업 후 2001년까지 피고용 안마사로 생활하다가 그해에 대구에서 T안마시술소, S안마시술소 등을 직접 개설하여 운영하기도 했는데 2003년에는 시각장애인의 최초 시민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 정보접근권보호위원회를 결성, 컴퓨터 음성출력방식에 대한 특허분쟁에서 승소한 바 있다. 

 

현재 그는 시각장애인 4명과 함께 나운동 26빌딩 소재 제일경락안마원을 운영하며 몸이 불편한 분들에게 안마를 통한 재활가료에 성심을 다하고 있다. 또한 그 자신도 물심양면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2017년부터 매월 30만원 씩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에 꾸준히 성금을 기탁함으로써 감사장을 받기도 할 만큼 이웃사랑에 대한 심성도 남다르다. 

 


 

 

 

 

할 수 없다는 것은 자기 비하이자 핑계


그에게 장애란 단지 조금 불편한 것일 뿐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컴퓨터 한글, 엑셀, 메시지송수신, 오디오 설치 및 간단한 기계조작 등을 척척 해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장애인이어서 못 할 거라는 편견은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정도의 불가능조차도 뛰어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와 노력의 차이일 뿐이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못하고 하는 것은 사실 핑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에게 앞으로의 비전을 묻자 “시각장애인들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몸에 배도록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다양한 직업 속에서 비장애인들과 상생이 이뤄지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교육시간에는 손끝으로 더듬어 읽을 수 있도록 점자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온 힘을 쏟을 계획”이라는 말도 들려준다. 더불어 자신으로부터 안마를 받은 뒤 어깨 및 허리통증이 사라지면서 훨씬 좋아졌다고 좋아하시는 어머님들을 볼 때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며 그러기 위해 앞으로도 더욱 공부하면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포부도 밝힌다.

 


 

 

두드림(안마)바우처(차량운행) 

*소득 및 자격기준 : 만60세 이상으로서 전국가구 기준중위소득 140%이하 또는 기초노령연금수급자

*서비스 내용 : 근골격계, 신경계, 순환계 질환의 증상 개선을 위한 안마, 마사지, 지압 등   수기용법 및 기타 자극요법에 의한 안마서비스 제공

*서비스 제공기간 : 10개월(1회4,000원 / 월4회 / 회당60분)

*서비스 신청·접수 : 거주지 읍, 면, 동 주민센터(바우처 담당자)

*제출서류 : 건강보험증, 의사 처방전(처방전 제출 시 질병분류코드 기재) 단, 등록장애인은 진단서 또는 소견서 제출 필요 없음

*기타 자세한 내용은 방문 또는 전화 문의

 

제일경락안마원

군산시 대학로342(26빌딩 8층811호)

T.063)446-9980 / 070-8658-8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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