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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소설 탁류길』(1)
글 : 채명룡 /
2018.02.01 15:59:0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이야기가 있는 소설 탁류길』(1)

 

화려했던 기억이여 안녕,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이름도 묘한 째보선창이 새롭게 조명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군산시가 2018년부터 뉴딜 사업의 하나로 중앙동과 금암동의 예전 째보선창 주변에 푸른 물결, 초록 물결, 황금 물결로 이름 지어진 3가지 방향의 도시재생 사업을 풀어 놓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추억은 그립고, 현실은 애달프다. 이 선창의 아스라한 애환들을 먼저 이해하고, 스토리로 만들어 나가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래서 소설 탁류와 연관된 째보선창 이야기는 나름의 의미를 가지리라고 본다. 

 

  

 <1930년대 째보선창이 그려진 지도>
 

 

<째보선창, 그 아련했던 기억을 찾아서>

 

그날의 선창은 늘 분주했다. 생선을 내리고 경매를 불렀던 금암동 동부어판장의 새벽. 그 새벽의 찬란했던 비늘의 향연은 어제의 기억으로 남아 선창 길을 떠돌고 있었다. 초라하다 못해 애절한 빈 선창을 바라보면서 발끝으로 톡 톡 바닥에 잠든 기억을 찾아본다.

 

햇볕은 아직도 내려앉지 않았다. 삼각형 분지처럼 만들어진 주차장에 도착했다. 강가의 아침은 늘 춥다. 하물며 겨울이 깊어가는 1월의 선창은 말해 무얼 하랴. 눈코 시린 건 사람만이 아니다. 건물 외벽, 쓸쓸히 말라 틀어진 샤시 창과 느슨한 계단과 거무틱틱하게 색이 바랜 페인트칠을 보면서 애정결핍의 강도를 잰다.

 


 

강 한쪽 귀퉁이가 움푹 파인 모양을 두고 입술이 째진 것 같대서 째보라고 불렀다고도 하고, 이 포구에서 객주집을 했던 힘센 사내의 별명이 째보였는데 이로 인해 째보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선창이 여기이다.

군산이 낳은 풍자소설가 채만식의 대표작 탁류가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 선창의 풍경 또한 바로 이 곳이다. 근세사가 살짝 비껴 간 이 자리는 긴 세월 동안 동면에 들어갔다.

 

1920년경 누군가 사진을 찍어 우편엽서로 사용했던 그림엽서 한 장이 전해졌다. 막막한 일제강점기에 사진을 찍고 그걸 엽서로 만들어 보낼 정도라면 예사로운 신분이 아니었을 걸로 짐작이 간다. 언청이처럼 째졌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고, 지도로만 보면서 그랬겠구나 생각했던 게 사진으로 보니 확실해졌다. 육지가 양 옆으로 쑥 삐져나오고, 물길이 그 안으로 살짝 말려 들어간 걸 보면서 째지긴 째졌구나하고 깨닫는다.

 

한 폭의 수묵화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진으로 보는 그 시절, 아련하게 비춰지는 한 어부의 일하는 모습에서부터 쌍돛대 높이 달았던 마스트까지 생생하다. 그날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이 포구에는 째보라는 이름이 남아 오늘도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부들과 상인들의 가쁜 숨소리와 외침들이 검게 물들어 있는 째보 선창 길. 길 위의 인생들이 먼 길 떠나버린 이 곳에는 적막감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자동차 소리 요란한 큰 길을 등지고 금강 하구를 바라본다.

 

오른쪽으로는 예전 수협 제빙공장과 냉동 창고가 있던 하얀색 건물이 떡 버티고 섰다. 슬쩍 꺾어져 들어가는 어판장 가는 길에 간판 없는 두부집이 문을 여는지 닫는지 여전히 그 모양으로 서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동빈정 어업판매소가 자리 잡았고, 어업조합이 수산업협동조합으로 바뀐 이후 지어졌던 회색빛 동부어판장 건물이 한가롭다. 그 앞은 판매장이었다가 지금은 선박수리점이고 그 중간에 어울리지 않는 수문 하나, 긴 시간을 외롭게 견디고 있다.

이 수문이 예전 째보선창을 복개하여 주차장으로 만들고, 하천이 지하로 바뀌면서 온갖 허드렛물을 흘려보내왔던 내항수문이다.

 

겨울 아침이라 호젓한 선창 길이다. 이 길에서 펄떡이는 생선의 자유와 뱃사람들의 귀향과 악다구니 쓰던 장사치들과 마도로스의 사랑과 애증이 잉태되고 떠나갔을 터이다.

그렇듯, 추억은 그리움이다. 그 아련했던 날들을 기억하며 나는 한가로워서 더욱 애잔한 째보선창을 걷는다.

 

 

<눈 내린 선창의 아침>

 

이 선창에서는 눈이 내려도 좋았다. 검게 그을린 얼굴색을 눈발에 감추고 있지만 감출수록 안쓰러움은 짙게 배어나왔다. 눈발에 붙은 몇 가닥의 바람에 아스라하게 간직하여 왔던 바지선들의 지난 세월들이 휘영청 밧줄에 매달렸다.

 

속 터지는 상처를 드러내 놓다 마는 이 선창에서 옛이야기를 내놓는 건 바보짓이다. 나는 암담했던 날들이여 안녕, 하며 돌아섰다. 

 


 

나무판자로 바람을 막고, 생선 비늘같이 날렵하게 뼈대를 세웠던 앙상했던 건물은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다. 일제 강점시대의 동빈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선을 잡아 돌아 온 새까만 뱃사람들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착취해 가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모진 풍파를 맞고 싸워 얻은 생선들을 좋은 가격에 거래해주려고 문을 열었던 이 건물은 1990년대 후반 한중 어업 협정 등의 풍파 앞에서 그만 좌초되고 말았다.

 

선창 골목은 사계절이 다르다. 시큼한 냄새를 풍기기도 하지만 서늘한 한기가 살갗을 간지럽게 하는 여름도 좋고, 갯가로 갈기()들이 미어터지게 나오는 늦봄도 좋다. 가을엔 몇 줌의 햇살로 한 끼를 때우는 풍요로움이 있다. 그 중에 가장 좋은 건 귓불이 빨개질 정도로 추운 날에 선창을 걷는 일이다.

겨울, 눈 오는 날의 선창은 그동안의 수고를 싹 덮어주는 것 같다. 소복하게 덮인 선창 강변으로 난 시멘트 길을 한 발씩 걷는다. 미끌미끌 조심스럽다.

 

선창 아래로 드러난 옹벽과 돌무더기들을 보면서 긴 시간이 흘렀음을 깨닫는다. 이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다 고개 들어보니 손에 잡힐 듯 흑암 등부표가 서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이 곳을 찾아 돌아오는 어선들의 길잡이 노릇을 해왔다고 한다.

그렇구나. 길을 밝히는 건 순간이 아니라 긴 시간이 필요하구나 하고 깨닫는 아침이다.

 

 

<떠나지 못한 갈매기는 텃세로 남고> 

 

거칠게 흘러내려온 금강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강가의 낮은 건물마다 햇볕이 내려앉아 있다. 드문드문 살펴보고 헤집어 보면 아직도 얼기설기 깁고 짜 맞춘 건물 틈새로 언뜻 언뜻 일본식이 눈에 띈다. 식당 옆 천생 안강망 사무장인 정희두씨 사무실도 겉은 환하지만 그만한 시간의 깊이를 가진 듯 낡고 초라하다. 초라한들 어떠fi, 여기선 초라가 대세이니.

 

언제나 저만치 서 있는 처마와 언덕을 등진 고샅에서는 마른 바람이 작은 회오리로 떠돌고 있었다. 소금기가 배어든 기둥마다 꺾어지고 시든 삶의 흔적들이 애달프다.

 

시차를 망각한 페인트칠을 보면서 참 소금기란 게 이렇게 억세구나하고 깨닫는다. 헌 옷을 겹쳐 입은 모습의 건물과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시간의 흔적들이 슬며시 눈에 들어왔다. 내 삶의 거친 숨소리도 이 바닥에선 숨을 죽여야 했다.

 

물이 빠진 흑암 등부표는 말라빠진 표정이다. 뻘을 가로지르는 갯 길의 흔적이 물길을 냈고, 그 물길 따라 시나브로 들 물이 차올랐다. 발목까지 깊숙이 박아두고 사방을 둘러보는 녹슨 바지선 위로 올라갔다. 짠 내가 훅훅 풍기는 한 뼘 기계실 위로 갈매기 몇은 날아다니고, 또 몇은 밑바닥과 닿은 갯벌 곁에서 먹이를 좇고 있다.

 

여기에도 색깔 있는 삶들이 두 눈을 번뜩이고 섰다. 게으른 표정인 몇 마리 새들과 서성이는 사람들 사이로 휭 하니 찬바람이 분다. 바닥을 굴러보지만 철제 바지선의 근육질은 건들면 터질듯 팽팽하다. 먼발치로 구름과 구름이 금강하구둑에 걸려 있고, 털게 몇은 낯선 이들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물이 빠지면 맨살을 내놓는 선창은 무심한 얼굴이다. 안에서 바라보면 모두가 변하지 않았지만 물이 들고 빠지면서 모두가 제 각각의 모습대로 살아간다. 손톱만큼 남은 햇살의 무리들이 시멘트 길 위에서 기지개를 켜는 늦은 하오의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뒷골목 해성식당에 가서 반지회에 소맥 두어 잔 걸치고, 담 벽에 기대 끄덕 끄덕여도 좋을 일이다.

 

어느 낯선 곳인들 이야기가 없으랴만, 어께를 늘어뜨린 이 째보선창은 떠나보낸 어선들의 슬픔보다 긴 침묵의 비린내가 진하다. 그들은 밤으로 향할수록 항구는 질긴 인연의 옷을 하나씩 벗어 놓는다. 바람 앞에선 모두가 연인이다. 연인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인가.

 

오늘 나는 낡아서 외롭고 슬픈 금강하구 언저리에서 먼 길 떠나거나 돌아오던 그 인연의 질긴 밧줄을 붙잡고 서 있다. 긴 머리 휘날리던 항구의 이별 앞에서 우리들의 가슴은 얼마나 애탔던가. 그동안 우린 너무 각을 세워 왔고, 너무 형식적이었으며, 너무 심심했다.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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