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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룡 기자의 '걸어서 걸어서 시간여행’-이야기가 있는 ‘소설 탁류길’
글 : 이진우 /
2018.03.01 15:23:5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채명룡 기자의 '걸어서 걸어서 시간여행’-이야기가 있는 소설 탁류길(4)

 


 

 

<기다리는 건 간절해야 온다>

 

누가 마도로스의 순정이라고 했는가. 여기는 멀리 떠나버린 어선들과 뱃사람의 험한 욕설도 다정한 밀어로 들리는 순백의 공허만이 남아 있다. 질경이처럼 뿌리를 내렸던 옛 동부어판장과 그 주변에는 가슴 아린 추억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강 건너 장항 언덕을 향해 손을 흔드는 갈매기들, 짠 내 품은 바람에 얹혀 길게 유영하거나 파닥이며 흐르는 그들에게서 나는 자유를 본다. 날개의 안쪽은 파란 많은 세상과는 달리 늘 하얗게 반짝였고, 거기에서 마치 하얀 바람이 나오는 듯 했다.

헐렁하고 늘어지게 게으른 고물 바지선을 올라타자 문득 영화 언더월드가 생각났다. 이 배도 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 녹슬어 벌겋게 물든 바닥을 보면서 뭔지 모를 위압감을 느낀다. 조작조각 흩어진 삶의 파편들을 깁고 때우려고 허벌라게 일한 뱃사람들의 한숨이 배어든 거라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의 소설가 채만식은 군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 탁류<인간기념물> 한 부분에 칠산 바다에서 잡아가지고 들어 온 첫 조기가 한창이다. 은빛인듯 싱싱하게 번쩍이는 준치도 푼다. 배마다 셈 세는 소리가 아니면, 닻 감는 소리로 사공들이 아우성을 친다. 지게 진 짐꾼들과 광주리를 인 아낙네들이 장속같이 분주하다.”라고 썼다.

오늘 나는 그 선창에 나와 손바닥이 하얗게 변하도록 일해 온 여인들을 떠올렸다. 그 갈라진 손바닥과 파여진 손등의 상처들에게서 간절했던 그날들을 본다.

하예서 더욱 슬픈 그녀들의 손바닥과 한숨이 잿빛으로 변해버린 금암동과 중동 언저리의 지붕과 지붕을 멀리 바라보았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우던 어머니들의 기도가 모여 새들의 유영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찬바람에 언 손을 호호 불며 허드렛일로 몇 푼의 생활비라도 벌려했던 아낙들의 애잔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두 손을 모으면 무사귀환을 고대하던 아내의 예쁜 마음이었고, 손을 풀고 일터로 나가면 매서운 찬바람에도 끄떡없던 또순이 엄마들이었다. 아득한 선창에 나와 예쁜 아내의 손을 비교하다니, 허허로운 웃음이 나온다.

기억은 이렇게 아픈 자리에 서면 더욱 생생해진다. 오늘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보던 그 엄마들의 품을 이 선창에서 깊게 느낀다.

 

채만식은 소설 탁류<인간기념물>항구래서 하룻밤 맺은 정을 데치고 간다는 마도로스의 정담이나, 정든 사람을 태우고 멀리 떠나는 배꽁무니에 물결만 남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매기로 더불어 운다는 여인네의 그런 슬프고도 달코롬한 이야기는 못된다.”고 썼다.

휘적휘적 돌아보자니 달코롬 하기는 커녕 약간은 기분 나쁜 시궁창 냄새도 나는 듯 하고, 냄새 맡는데 약한 내 코에도 갯냄새와 섞인 후줄근한 비린내가 썩 기분 좋지는 않다. 그런데 묘한 일이다. 내키지 않으며 한발씩 내딛는 동안 이 후진 냄새에 동질감을 느끼다니.

오늘 이 쓸쓸함의 그늘에서 뱃사람과 그의 아내들과 가족들이 내뿜었던 뜨거운 열기를 본다. 탈수록 뜨거워지는 연탄불처럼 치열했던 그날의 삶은 오늘도 그렇다.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나는 누구에게 뜨거운 가슴이었던가생각해 보는 선창으로 가는 길이다. 이 빈 길을 걷다보면 비록 색은 바랐지만 새벽을 열어갔던 험한 인생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갯가를 따라 발길을 잡는다. 햇볕이 잘 드는 날이면 골목에는 비린내가 슬며시 달라붙는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발랄했던 그날의 기억들을 하나 둘 모아놓듯이 생선 몇 마리씩을 건조대에 걸어 놓았다. 그리워하면 속살을 내놓는 강물의 이치였을까. 사람들은 목이 말랐고 갈증을 풀듯 이 골목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돌아오고 있었다.

  

군산이 고향이 고은 시인 또한 가끔씩 이 선창을 거닐곤 했다. 서천에서 시집왔다는 어머니가 첫발을 내디딘 자리가 바로 이 선창이라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은 아닐까. 깊은 상념에 젖어 째보선창을 거닐던 때가 엊그제 같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를 보면 주인공 초봉이의 아버지 정주사 또한 서천에서 논밭을 팔고 여기 째보선창에 내려 군산 땅에 자리를 잡았다.’고 줄거리가 전개되고 있다.

참 묘한 일이다. 군산을 대표하는 시인과 해방되던 해에 먼 길 떠난 소설가의 집안 이야기가 겹쳐지니 말이다. 서로 알고 지냈을 턱이 없는데도 시대상을 달리해서 이 선창의 인연을 공유하고 있다니.

 

사람이 그리운 게 요즘의 이 곳이다. 고은이 추억에 잠겼듯, 탁류의 정주사가 소설 속 이야기 안에서 고단한 삶의 짐을 내리듯 하나씩 둘러본다.

그리웠던 이를 하나씩 불러보던 그날. 이 선창의 노을은 세상을 향해 더욱 붉게 타올랐다. 나는 그 노을을 바라보면서 누군가의 한쪽 가슴이 되기 위해 스스로 불꽃이 되거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웠던 날을 하나씩 그물에서 건져 손바닥에 올려놓고 생선 뒤집듯 곰곰 살펴본다. 나는 어설픈 시멘트 바닥 위에 기다리는 건 간절해야 온다라고 쓴다.

 

채명룡 기자의 '걸어서 걸어서 시간여행’-이야기가 있는 소설 탁류길(5)

 


 

 

<언청이, 째보 그리고 선창>

 

일제강점기의 혼란한 상황을 초봉이라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역설적으로 풀어낸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

일제에 협력한 친일작가로 오르내리는 그는 혼란기를 살다간 논란 속의 작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민족의 죄인이라는 작품으로 잘못을 구했다.

하나님 앞에서면 누군들 죄인이 아닐까. 나는 오늘 째보선창이 시작되는 삼각형 주차장 앞에 서서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하는 이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언뜻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났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던 그는 28세의 나이에 일찍 갔다.

 

탁류의 첫 장을 열면 지도를 펴 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에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지금은 흔적도 없어졌지만 1900년대 초 지도를 살펴보면 이 선창 부근이 하고 휘어져 들어갔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쑥 들어간 지형을 두고 째보라고 이름 지었으니, 옛날 사람들 지명하나는 참 기막히게 만들어냈다.

그 길을 오늘에 걷는 건 납작하게 엎드려 사는 사람들의 삶의 뒤 안을 바라보는 일이다. 군산의 중동과 금암동 일대를 지나 둔뱀이로 향했던 일제 강점기, 초봉이의 간절했던 날들을 오늘에 새겨본다.

 

입술이 째진 이들을 놀리는 말로 언청이라고 불렀다. 어쩌다 한번쯤 눈에 띠었고, 보여야만 보는 게 다였지만 오늘에 그 사람의 슬픔과 마음 속 갈증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인다.

언청이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를 본 적이 있는가. 아이 입술이 갈라져 나온 게 마치 자신의 업보이자 죄인 양 치마폭에 감싸 안아 키우던 그 시절의 어머니들.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1980년대까지 온갖 걱정과 시름을 감싸안아 주었던 선창, 긴 세월 잠을 잤던 이 곳이 다시 깨어난다고 한다.

요즘은 이런 장애를 그대로 놔두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예전엔 입술 위쪽이 갈라진 상태로 질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고 또래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악동 아이들에게 엄마는 방패였고, 엄마는 유일한 피난처였으며, 삶을 달리할 때까지 언제나 구세주였다.

 

발을 돌려 선창쪽을 보고 섰다. 왼쪽의 건물들은 화려했던 그날들이여하고 폼을 내는 듯했지만 이층 언저리엔 궁기가 가득 들어찬 피곤한 모습이다. 오른쪽은 더 절박하다. 예전 1990년대 까지 번창했던 금강수산 냉동공장이 있던 건물이다. 멀쩡하게 하얀 건물이 그대로이지만 수산업이 멀리 길 떠난 마당에 속앓이가 어제 오늘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째보선창, 그리고 선창 가는 길. 그 이름과 기억, 그리고 아련한 추억으로 떠도는 그 포구는 없어지고 물때마다 돌아오는 잿빛 뻘과 텃새로 남은 몇몇의 갈매기들이 낮고 쓸쓸하다.

생선경매를 부르던 왁자지껄한 소리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어부들의 아귀다툼도 이젠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사연 많은 사람들과 시간들은 간 곳 없고 허연 배를 드러낸 포구에 남겨진 폐선 몇이서 아스라한 그 때를 회상하고 있다.

나는 오늘, 떠나지 못한 갈매기로 남는다. 그리고 탁류와 함께 남겨진 강기슭을 굽어본다.

 

 

채명룡 기자의 '걸어서 걸어서 시간여행’-이야기가 있는 소설 탁류길(6)

 


 

 

<흔들흔들 탁류와 함께 걸어가는 길>

 

일자로 난 선창의 길은 외롭다. 사람 냄새가 끊긴 이 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물이 빠지면 마치 어느 노숙자의 헤진 외투처럼 허접하고 눈 둘 데가 없지만, 낡아서 눈길이 가고 눈길을 좇아 가다보면 어느새 아련해지는 선창길이다.

아련함은 애절함의 다른 말이다. 걸레처럼 헤진 속곳을 보여주는 선창이지만 애절함을 넘어 서서 간절했던 오늘이 다시 피어나고 있다.

고개를 떨군 어선들과 그들을 결박해 놓은 억센 밧줄과 심난한 표정의 회벽 건물들을 휘휘 둘러본다. 이 강가에서 펄떡펄떡 뛰던 물고기들과 억센 사나이들의 손짓과 아줌마들의 가쁜 숨소리가 익어갔을 것이리라.

바람따라 외로움이 떠밀려 온다. 외로울 땐 외로움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흔들흔들 걷는다. 후진 뒷길이나 선창, 포구, 갯가를 걸을 땐 혼자도 좋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둘이라면 더 좋다. 앞서거나 뒤 따르면서 허름한 세월의 흔적들을 기웃거려 보는 일도 좋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인간기념물> 한 부분에는 선창의 풍경에 대해 날이 한가한 것과는 딴판으로 선창은 분주하다. 크고 작은 목선들이 저마다 높고 낮은 돛대를 옹긋쫑긋 떠받고 물이 안 보이게 선창가로 빡빡이 밀려 들었다.”라고 했다.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의 끝을 뒤좇아 밟으면서 회색빛으로 늘어선 금강하구를 따라간다. 하구의 안쪽, 생선이나 조개류를 다루어 씻어내는 오막살이 포장마차가 난간에 위태롭다.

이 난간에 기대 어패류들을 다뤄주면서 생계를 이어갔던 어머니들의 거친 손과 주름진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칼을 생각한다. 뻘 속에서 건져 올린 온갖 조개류와 앞 바다에서 잡아 온 몇 상자의 잡어들이 요즘 일거리로 남았다.

이 포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낡은 함지박과 물통, 몇 가지의 플라스틱 작업용기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일거리가 있건 없건 깔끔하게 정리하는 건 생선 다루는 작업장의 불문율이다. 그렇잖아도 비린내와 깨끗하지 못하다는 선입견이 있는 생선인데 그걸 다루는 일을 천직으로 아는 사람들이 허술히 할 리가 없다.

두 어 평 남짓한 작업장 안에 들어서서 생선과 조개류의 살을 바르고 바닷물로 헹구어 내면서 내장과 비늘을 정리해주던 아줌마들의 날렵한 손놀림을 상상한다.

 

사립문 열듯 살며시 밖으로 나온다. 문 밖은 하오의 바람이 무리로 일어서고 있다. 쑥 내려간 난간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설프게 난 계단이 뻘밭까지 이어졌다.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내려가 밀려든 뻘에 손을 얹어 본다. 시큼한 냄새가 밀려오지만 싫은 정도는 아니다.

굵기가 엄청난 밧줄과 밧줄로 칭칭 동여맨 채 수리를 위해 기다리는 낡은 어선들과 몇 척의 바지선들이 그나마 다정한 표정이다. 힘이 빠진 배들의 그 심심한 안색을 살펴가며 선창에 널린 삶의 흔적들을 건져 올려본다.

 

몇 걸음 더 가본다. 조개와 해삼, 그리고 갖가지 수산물을 가공해준다는 안내판과 수협 비응도 공판장 중매인이 운영한다는 간판도 눈에 띈다. 이래 허접한 간판인데 장사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꽃게가 알을 품었듯이 그 속은 알차기가 그만이라는 사실을 곧이어 발견했다.

허술한 간판, 허접한 출입구 안으로 들어가자 딴 세상이 펼쳐졌다. 들어가 보니 우선 길게 쭉쭉 이어진 작업장에 건조장, 수족관, 세척장과 일하는 아줌마들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선창의 하루는 낡은 것을 눈으로 좇거나 그 안에 동화되는 일이다. 오늘 한가롭게 주변을 맴도는 몇 마리 새들을 바라보면서 그렇구나, 사람이나 사물이나 주변에 의해 변해가는 구나생각한다. 어설퍼서 애정이 가는 긴 시간의 흔적들이 이렇게 아슴아슴 새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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