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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 석상열의 ‘여행 사진’
글 : 채명룡 /
2018.10.01 13:21:3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잠보석상열의 여행 사진

- ‘잠보의 뜻=스와힐리어 안녕하세요

- 25년전 사업가에서 전문 여행가로 변신

- 여행과 문화, 재능기부로 나누고 베푸는 삶 


 

느림보의 의미를 가진 늘보와 잠이 많다는 의미를 가진 잠보는 비슷한 이미지이다. 잠이 많아 스스로 잠보라고 부르는 여행가 석상열. 그러나 이 잠보안녕하세요라는 스와힐리어 인사말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나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그는 이처럼 가만가만 세상과 소통하여 왔다.

그의 발걸음은 더디지만 여행지마다 그 나라의 문화와 그 장소의 의미들을 새기는 일을 계속하고 있 다. 지난 7월에는 중국의 관광청에서 체재비를 모두 대주면서 초청할 정도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진과 설명 등으로 독보적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가보아야 할 곳과 봐야 할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석상열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잔잔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하여 묻고 답하면서 중국의 역사와 유적, 유물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놀라웠다. 그는 정보를 아낌없이 주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입에서는 중국의 오지 여행에서부터 인도의 어느 자그마한 소도시의 유적까지 막힘없이 이야기가 풀어져 나왔다. 축적된 정보와 방대한 지식은 듣는 이들을 충분히 놀라게 했다. 그러면서도 필자의 피부 알레르기 혹은 아토피 질환에 대해 듣다가 다음 날 선뜻 인도에서 사왔다는 비누 한 장을 건네는 살뜰함이 가슴에 닿는 사람이다.


72학번의 자유여행 도전기

군산고와 고려대를 나온 그는 72학번이다. 어렵게 3수 끝에 고대 행정과에 들어가 체육과로 전과하면서 한 때 교수를 꿈꿨다. 19806ROTC로 제대했고 늦은 대학 진학과 군복무 등으로 학위 과정의 때를 놓치면서 자연스레 그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에게 청와대와 마사회 등 큰물에서 놀 기회가 주어졌지만 1981년도에 큰 형님에게서 가업인 환경사업을 이어받는 걸 선택했다. 자원과 환경관련 사업을 하다가 1987년쯤 내시경 마우스피스를 개발하여 특허를 내면서 의료기 사업에도 손을 댔다, 하지만 갖은 고생을 다 했다.

사업으로 나름 성공도 했지만 그는 동생한테 물려주고 훌쩍 여행의 길을 떠났다. 중학교 때부터 무전여행을 하면서 가슴에 눌러두었던 방랑자의 길에 나선 것이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다.

그가 여행길에 나설 때 아내는 요리전문 직업학교를 운영하면서 가계를 꾸려 나갔다. 몇 년 전 이 직업학교도 그만 뒀다. 지금도 아내에게 주머니에 돈이 있으니까 여행을 가는 거라면서 핀잔 아닌 핀잔을 듣는다고 했다.

사업으로 조금 벌어놓은 것도 있지만 아무런 벌이가 없는 여행길에 나선 만큼 그는 절약이 몸에 뱄다. 그는 최근 10년 이상을 중국여행에 집중했다. 그 여행의 길잡이가 예전 의료사업을 하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 수교 이전인 1987, 그는 이 마우스피스 사업으로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일본의 한 신문사에서 이 의료기기 개발을 보도했는데, 이를 중국의 신화사 통신에서 인용하였고, 중국의 한 기업이 그 기자를 통하여 합작을 제의하여 중국에 가게 되었지요.” 그 어렵던 의료사업이 그에게 여행의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주다니, 세상의 일이란 참 묘하다.

우리나라만 내시경 검사 마우스피스를 일회용으로 규정하고 있지요. 그 때 개발하여 특허를 받은 마우스피스는 한번 물면 이 자국이 나고, 고압세척을 하면 껌처럼 녹아버리는 성질까지 겸하고 있었고요. 의료법에 맞춰 재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기술 개발을 한 것이지요.”

그는 이 특허개발로 꿈에 부풀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건강보험에 개별 수가가 아닌 포괄수가로 잡히면서 주문이 생각처럼 이어지지 않았고,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환경사업에서 번 돈을 의료기 사업에 쏟아 부었다.

그가 여행자의 길에 나서면서 의료기 사업은 다섯째 막내 동생이 맡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최근에는 이 사업을 정리하면서 마음의 짐을 풀었다.

1993년 유럽 자유여행에 홀로 도전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던 1990년 초, 그는 대학생 배낭여행 신문광고를 보면서 일반인은 왜 배낭여행을 가지 못할까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 자유스런 여행을 준비하다 1993630일 홀로 한 달 동안 배낭여행에 도전하게 된다.

북유럽과 발칸 3, 그리고 동유럽 일부를 돌아보기 위하여 1년 오픈티켓을 끊고 처음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내렸다. 당시 마흔 한 살이었다. 당시엔 27세 이하에게만 배낭여행 유레일패스가 허용되었고, 그는 1등석 좌석인 실버티켓을 사야만 했다.

초행이었지만 그는 물어물어 노르웨이와 스웨덴, 핀란드를 돌았으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거쳐 육로로 폴란드로 들어가 동유럽을 돌아봤다.

그 때부터 그는 거침이 없었다. 지중해를 두고 위 아래로 이어지는 나라들을 돌아보았다. 지브롤터 해협을 보기 위하여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들어갔던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스페인에서 출발해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로 가려는데 물어본 현지 여행사와 한국여행사 등 10명의 딱 절반은 비자가 필요하다.’였지만, 절반은 필요없다라는 대답였다. 그런데 모로코에 가보니 북한은 비자를 받아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면제였다.”

그 당시만 해도 어느 나라와 비자 면제 협정이 맺어졌는지 아는 게 쉽지 않았다. 여행사의 페키지 여행도 아니고 홀로 떠나는 배낭여행 족들에게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기란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그 길 위에서 늘 떠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때부터 여행 정보를 나누려는 생각 또한 그의 가슴에 자리잡아갔다.

 인도와 중국 여행 전문가로 정착

여행길에 나선 초기 10년이 지나고 그는 인도와 중국에 집중하게 된다. 고등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던 아들과 둘이서 1997년 처음으로 45일간 인도 여행에 나섰고, 2년 뒤 초등 3학년인 둘째를 데리고 또 다시 인도 여행에 나섰다. 이후 그는 2007년까지 인도 여행만 약 20차례나 다녀왔다.

본격적으로 여행길에 나선 1993년 이후 그는 당시 196개국이었던 세계 각국을 전부 돌아보려는 꿈을 가졌다. 주마간산 격으로 한 도시라도 갔을 경우 세계전도에 핀으로 꽂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 나라 숫자를 채우는, 말하자면 인증샷찍고 오는 방식의 세계견문록은 내려놓았다.

열정은 있었지만 뚜렷한 목표가 없었던 그의 길에 문화라는 새로운 여행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이후 그의 여행은 한 걸음씩 한 걸음씩이었다. 어디를 가든 그 나라와 도시와 역사적 유물 등 문화의 가치를 음미하고 가슴에 새기는 일이 여행 기준이 되었다.

이제 그에게 여행이란 천천히 나아가는 일이며, 보고 느낀 걸 나누는 일이다.

2007년 이후 그는 중국 여행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물론 독학으로 중국어 공부도 했고, 나름 의사소통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중국 여행만 약 200회 정도나 될 정도로 중국문화에 대한 그의 샘솟는 탐구 의식은 놀라웠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중국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사진으로 전해졌다. 내몽고에서부터 서장 티벳, 그리고 운남성 끝까지 그림같은 여행의 보물창고들이 펼쳐졌다.

 

여행=문화, 여행 노하우 재능기부 시작

그는 문화를 생각하는 여행을 하면서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또한 홀로 떠나는 데 익숙했던 그는 3년 전부터 자신만의 여행 노하우를 재능기부하기로 맘먹었다. 그는 꼭 따라나선다고 하는 퇴직한 친구들 혹은 가까운 지인들과 가끔씩 중국이나 인도 여행을 떠난다.

11월 중순에도 가까운 친구 6명이 인도 여행길에 오르기로 했다. 그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오로지 자유여행이다. 공통경비는 항공료와 문표(입장료). 교통비, 숙박비뿐이다. 나머지는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게 기본이다.

홀로 여행할 땐 자유로웠지만 동반자가 생기니까 그들을 모두 챙겨야 하는 부담이 많더라고요. 자유여행에 익숙하도록 이끌어주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는 내년부터는 일본의 시코쿠에 있는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코스를 준비할 예정이다. 틈틈이 시코쿠의 지도를 다운 받아 순례할 사찰들의 정보를 핸드폰에 저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어 공부도 시작할 셈이다. 여행을 다녀보니 꼭 현지 말을 잘 할 필요는 없지만, 지도와 이정표를 살피고 음식을 주문할 수 있을 정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전문가인 그 또한 이를 스스로 준비하고 있다.

여행가 석상열이란 호칭부터가 거북하다는 그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의 눈빛이 말해주었다.

인터뷰 하는 동안 핸드폰에 저장된 방대한 양의 중국 여행 태마와 지도, 유물, 유적에 대한 설명 자료를 살펴보았다. 이렇게 준비하는 게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내내 생각했다.

석상열 여행가와의 소통은 네이버 잠보의 여행사진을 돌아보거나 여행가에게 문의하면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010-7572-6600/syseo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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