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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여자, 송수란
글 : 채명룡 /
2018.09.01 11:02:4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간 큰 여자, 송수란

- 군산 의류상인의 자존심 볼빅 브이닷수송점

- 비어가는 수송동 상권에 새로운 메이커로 도전장을 던지다.

- 30년 장사 노하우로 역경 극복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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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

그녀의 입에서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말이 튀어 나왔다. ‘멋있다는 건 굳이 길지 않아도 좋다.

자기관리가 되는 사람 송수란, 그녀의 이번 볼빅 브이닷수송점 개업은 일상적인 개업이 아니라 군산 의류상인들의 자존심을 걸었다는 소리도 듣고 있다. 남편과 함께 롯데몰 입점 반대 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뭐든 걸치고 나서면 배우 같기도 하고, 모델 같기도 하고, 아줌마 같기도 하고, 처녀 같기도 한, 콕 찍어서 뭐라 할 수 없는 팔색조같은 송수란씨.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불혹의 나이가 저물어가는 지금 그녀는 생생하다. 그녀를 보면서 실례될지는 모르지만 천생 의류업이 어울릴 여자라고 생각했다.

“(롯데몰이)거대한 절벽같은 상대이지만 한 번은 붙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당찬 말이다. 물론 붙어보고 싶다는 건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였을까, 생각이 교차했다. 꽤 오랜 세월 여성 CEO로 일하면서 비우고 채워왔던 세월의 지혜가 배어 있음을 느꼈다.

 

옷 장사 30, 자존심을 건 새로운 도전

옷 장사를 30년 가까이 했던 장사꾼으로써 이렇게 무너져야 하는가하는 생각에 자존심이 무척 상하더라고요

남편과 함께 롯데몰 입점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그녀였다. 지치기도 하고, ‘옷 장사는 안되는가 보다.’ 하고 쉬려고도 생각했다.

장사라는 게 흐름이 있어요. 새로운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야 되니까 개업을 계속해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롯데몰이 들어오면서 ‘(장사가)안된다 안된다하니까 사람들이 다 기운이 빠져있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지요.”

새로운 메이커를 찾아 매장을 오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군산경제가 어두운 때에 개업식을 하는 건 꿈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도전이 아니라 시련으로 얼굴색을 바꾸기 십상이다.

남들이 모두 움츠리고 있을 때 송 대표는 빈 매장을 찾아 갓 출시한 볼빅 브이닷이라는 메이커를 달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

내 자존심도 그렇지만 가까운 분들이 수송동 상가회장이니깐 버텨야 한다고 은근한 압력(?) 같은 눈길을 보내더라고요.” 송 대표는 나중에 보니 그 분들이 개업하는 데 큰 힘을 주더라면서 고마워했다.

송수란은 시대를 거스르는 간 큰 여자가 분명하다. 어쩌면 엉뚱해서 자꾸 눈길이 가는 볼빅 브이닷이다.

하지만 오늘의 일이 침울해진 군산의 상인들에겐 작은 희망으로, 또한 수송동과 군산의 의류상권을 지키려는 분들에게 용기 있는 도전으로 이어지길 기대 해본다.

  

시련을 넘어 꿈을 향해 간다

함께 살자고 롯데몰 반대운동의 맨 앞에 섰던 게 송수란이다. 그런데 같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이 변절하여 롯데몰 앞에 건물을 짓고 그들의 논리에 함께하는 걸 보고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롯데몰이 들어오고 하던 메이커도 그 곳으로 들어간 마당에 가게를 빼는 게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사업이 휴먼니티는 아닌데 자꾸 직원들에게 눈길이 갔다.

지금 가게의 건너편에서 유명 ‘A’골프메이커를 했는데, 건너편을 보니까 자꾸 빈 가게가 늘어나는 거였다. 외면하려고 해도 그런데 그게 안되는 거다. 예상은 했지만 억장이 무너졌다.”

A메이커 본사에서 롯데몰에 들어가라고 오래 기다려줬다. 그런데 롯데몰 반대대책위의 중심에서 일했던 상인의 하나로써 자존심을 버릴 수는 없었다. 안한다고 포기했다. 내려놓자 새로운 길이 보였다.

해보니깐 장사라는 건 상권을 보호해줘야 사람들이 찾는 것인데, 자꾸 빠지기만 하니깐 30년 옷 장사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웠지요.” 송 대표는 임금하고 임대료를 감안하면 안하는 게 이익이었지만 친동생처럼 생각했던 매장 직원들을 바라보면서 벌어놓은 돈 까먹을 각오하고 매장을 꾸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려운데) 왜 두 명이나 쓰냐고 묻는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여기 있는 직원들이 나하고는 오랜 세월 같이 있었는데, 적어도 하루 12시간 이상을 함께 일한다. 그런 면에서는 어쩌면 식구들 보다 가깝다. 장사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누구와 함께 일 할까 싶었다.”

그녀는 볼빅 브이닷의 상품이나 디자인이나 어느 메이커 못지않다면서, “초보들은 못한다. 나는 경험이 있으니깐 도전할 수 있었다.” 고 했다.


교장선생님댁 딸내미에서 억척 또순이로

이빨 빠지듯 비어가는 수송동 상권 점포를 바라보면서 이번 가을은 을씨년스럽겠구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썰물이 지나가면서 이름 모를 암초 하나를 노을빛에 내놓아주듯 가게 하나가 생겼다. 무너져 내리는 폭염 속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저는 전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익산이 고향인데 억척스러웠고, 아빠가 중앙여중 교장으로 퇴임했는데 화가였어요.” 그녀가 민주적인 아빠로 부르는 서양화가 송기수(79)선생의 둘째 딸이다.

수런대는 가을 수선화처럼 가냘픈 듯 휘어지면서도 꺾이지 않는 강단이 엿보이는 그녀는 군산사람이다. 부속초, 군산여중, 영광여고, 서해대를 나왔다.

어려서 피아노를 쳤는데 엄마와의 갈등으로 그만두면서 대학에 떨어졌고, 마음을 잡지 못해 방황하다 서해대 실내디자인학과에 들어갔어요.”

남편이 1990년대초에 지금의 영동 시어머니 건물에 신발가게를 냈다. “친구 소개로 지금 남편이 하는 영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끝나면 지나가다 생맥주도 한잔씩 사주고, 노래방 코인 500원짜리도 자주 넣어주고 했는데 그게 결혼까지 이어졌어요.”

남편하고는 10년 차이다. “그 당시 스물 한 살인 나에게 까지게 보았더니 아니더라. 달리 보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스물한 살에 결혼을 하자마자 임신을 했고, 그 이후로 쭉 장사만 했다.

영동 초입의 다섯평 신발가게 헉스에서부터 장사 시작했고 그 이후 여러 가맹점을 거쳤다. 기억에 남는 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메이커로 영동에서 패션쇼도 열었던 스맥스와 전국에서 1위 매출을 올렸던 청바지 메이커 보이 런던’, 그리고 치열한 경쟁 끝에 대리점을 따서 억대의 돈을 들여 가게를 오픈했지만 IMF로 날아보지도 못하고 망한 숙녀복 메이커로 보그이다.

영동 한가운데에 차를 막고 길을 내면서 상권이 허물어졌다. 수송동으로 상권이 움직였고 늦게 두 칸을 얻어 아웃도어를 했다. 마모트 몽벨, 살로몬 등등 메이커를 바꾸면서 월세 부담도 많았지만 잘 버텼다.



 

마음을 얻는 상인이 되고 싶다.

사람은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장사 끝났다. 힘들고 피곤하다고 생각하니 계속 가라앉았다. “지금에 보니 롯데몰이 들어왔지만 별거 아니더라.’ 그런 생각을 하니까 힘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새로운 수송동 상권에 도전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가까이 했던 분들을 찾아 영업도 하면서 힘을 얻는다.

상인들은 롯데몰이 오픈하면서 의욕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무기력했다. 반대하던 사람들이 입점하는 아이러니한 일들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 곳에 들어가면 당장 매출에 영향을 주는 구조이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본사에서 하라는 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아픈 사연도 있다.

상인들도 본사에 예속되어 있다 보니 점포를 넓히라면 넓히고 옮기라면 옮겨야만 하는 전형적인 의 입장이예요. 지금에 와서 영업권을 지키려고 점포를 3개씩 운영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어요.”

벌어야 임대료도 주고 직원 인건비도 주며 먹고살아야 하는데 전체적인 불경기에 이런 의 구조에서 그게 가능하지가 않다는 게 문제이다. 그런데도 하던 일이니까 가는 거라고 보면 틀림없을 거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장사를 해서인지 손님을 만나는 게 이제는 편해요. 손님이 들어오면 듣지 않아도 취향이나 바라는 걸 느낄 정도는 된 거 같아요.” 무슨 신기가 있나? 그녀와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다.

오랜 걱정을 털어내서일까. 그녀에게서는 신바람이 난다. 살펴보자니 무가당(무척 가진거 없이 당당하다)’ 같은데,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서부터 비롯되는 걸까, 무척 궁금했다.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하면서 벌어서 40부터는 일 안하고 살려고 했어요.” 그런데 마음이 싹 바뀌었다. “소상공인들 반대를 미워하는 분들이 SNS돈 벌었다고 외제차 타고 다니고 어쩌고 하는 ××’ 이라고 하는 댓글 보고 정말 충격받았어요

그런 분들도 할 말이 있으니까 했겠지만 뼈 빠지게 일하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라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정성은 시나브로 찾아온다.

자존심 지키려고 수많은 좌절을 맛본 송수란.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날아가는 걸 보고 군산의 상인들이 힘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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