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미용실 원장이 꿈이었던 남자, ‘광고사’ 사장이 된 사연 나이스광고 원용환 대표 인터뷰
글 : 이생곤 /
2017.08.01 13:00:03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미용실 원장이 꿈이었던 남자, ‘광고사사장이 된 사연

나이스광고 원용환 대표 인터뷰

 

 

 

뭐하나 특별함이 없었던 아이, 어느날 TV에서 보던 헤어미용 진로 프로그램을 보고 나도한번 해볼까라는 자신감을 갖고 수년간 경험을 쌓았지만 결국 실패를 하고 여러 직업에 전전하다가 광고업에 눈을 뜨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안착한 이후부터는 수익의 일정부분 나눔과 고용노동부 여성친화일촌기업인증 수상, 군산 상평 군부대에는 매달 쌀기부에 가까운 장래에는 청소년들에게 진로코칭을 하고 싶다는 이 남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제대로 실천하는 군산 나이스광고사 원용환 대표 이야기다.

 

장마로 꿉꿉한 7월 초 어느날 자동차 실내 에어컨을 최대치로 올리고 인터뷰이와의 약속한 장소인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서 가까운 옆 공터에 주차를 하고 사무실 문을 조심히 열어본다. 제일 먼저 기자 눈에 들어 온 것은 대형 인쇄출력기, 바삐 움직이는 직원들에 동조하듯 출력기에서 '지이익, 지이익' 연신 굉음을 내고 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기자님, 날씨가 겁나게 덥지요.(웃음)"

 

제법 큰 광고사인 관계로 잘 빠진 슈트와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가만 앉아서 VIP 손님과 환담만 나누는 대표를 상상을 했던 기자는 바로 앞에서 이마에 땀이 송글 맺힌 얼굴에 싱글생글 웃고있는 캐주얼 복장의 대표와 마주하고 있다.

 

바쁜 업무로 인터뷰가 그의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부담이 되는 분위기... 그의 배려 있는 한마디와 함께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실장님 인터뷰 끝나면 제가 나머지 일 다할게요. 한시간만 고생좀 해주세요."

 

 

헤어디자이너는 나의 꿈

 

3 시절 용환은 공부엔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까진(?) 부류의 아이도 아니었다.

그런 용환이가 관심을 나타냈던 분야는 다름아닌 헤어디자인 이었다.

 

"2 때 까지는 꿈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구요. 그냥 공부는 좋아하지 않지만 말썽은 부리지 않는 얌전한 아이? 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그러다가 대학 진학을 코앞에 둔 시점인 고 3 이 되니깐 뭘 해야할까 고민이 많이 되더라구요. 어느날 TV에서 헤어디자인에 대한 프로그램이 방영이 되고 있었는데 헤어디자이너 '박준' 원장이 나온 인터뷰를 보고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 용환은 헤어디자인에 대한 책을 구독해서 보게 되었다. '난 꼼꼼하고 예전부터 패션 쪽에도 관심이 많았어 어쩌면 이쪽 방면이 나에게 맞을거야' 라는 자신에게 세뇌를 하면서 용환이의 미래 진로는 그렇게 만들어져갔다.

 

군산에 위치한 한 대학의 헤어디자인학과에 입학한 후 헤어 전문기술에 더욱 매진했다.

 

"너무도 하고 싶던 헤어디자인을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하니깐 절로 신이나서 재미나게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오직 손으로 하는 기술이라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구요."

 

대학을 졸업할때 즈음 자격증이 손에 쥐어졌고 졸업을 함과 동시에 용환은 군대를 가게 되었다. 군대에서 머리를 깎는 군인을 일명 '깍새' 라 한다. 헤어디자인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었던 용환은 훈련병 때부터 앞에 성을 붙여 '원깍새'라고 불렸다.

 

"당시 군대에서 헤어디자이너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전문 자격증을 갖고 있는 저에게 두발정리가 맡겨졌는데 많이 깎았을때는 한 60명도 넘었던거 같아요. 이제 갓 군대에 들어온 훈련병이라서 힘들다고 말도 못하고요... '바리깡' 질을 계속 하면 손에 물집이 잡히고 손 악력도 약해져셔 수저 들기도 힘이들더라구요(웃음).

 

'미용실 원장이 되려면 이정도 고생이야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머리 속으로 되뇌이면서 깍새 생활을 즐겼다.

 

"어이 원깍새, 네가 깍으니깐 뭔가 달라 보인다. 너 기술 아주좋아. 나 제대할때까지 잘 부탁한다."

 

무수한 칭찬 세례는 바리깡을 이용한 헤어컷 기술을 더욱 향상시켰고, 은근 깍새 생활을 즐기는 그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준 것은 더욱 말할 나위가 없었다.

 


 

 

열정페이 서울생활... 그러나 좌절

 

바리깡 악력으로 다져진 용환의 손에 거쳐간 수천 명의 군인들, 군 제대후 제대로된 미용실에서 경험만 조금 하면 바로 저너머에 그의 이름으로 된 미용실이 보였다.

 

"군 복무 기간중에 미용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했어요. '지방 보다는 헤어디자인 기술이 좀더 앞서 있는 서울이 낫겠지?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고라는 '박준 헤어디자이너 본점' 에서 일을 할 수있는 기회가 있을까?' 라고 스스로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제대하기전 여기저기 수소문끝에 박준 헤어샵 서울 신천점에서 스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합격하여 일을 하게 되었어요. 본점은 아니지만 규모면에서 결코 본점에 밀리지 않았어요."

 

꿈에 그리던 미용실에서 일을 하게된 용환은 누구 보다 더 일찍 나왔고 누구 보다 더 늦게 퇴근을 했다. 디자이너가 컷트를 마치면 기다렸듯이 스펀지로 손님 얼굴 닦아주고,빗자루로 머리카락을 쓸고, 손님 샴푸 해주고, 월급은 60여만 원에 불과 했지만 용환에게 열정페이는 당연했다.

 

두어달 지난 시점부터는 가위질을 할 수있는 행운도 주어졌지만 곧 좌절의 연속이었다.군대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두려움들이 엄습해왔다. 군대에서의 깍새 생활은 그 누구도 뭐할 할 수 있는 자격증 보유자 였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국내 최고의 헤어디자이너들이 활동하고 있는 미용실이 아니던가.

 

"처음엔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 위주의 단순한 커트 부터 시작합니다. 문제는 디자이너들이 제가 하고 있는 커트를 유심히 살펴 보고 잘 못한 부분을 지적하는데 아주 눈물이 쏙 빠집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갓 군대를 제대한 녀석이 한두살 많은 여자 디자이너한테 혼나서 눈물이 쏙빠지는 상황이요. 그 독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디자이너들의 계속되는 핀잔과 모진 훈련은 용환을 더욱 위축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하루는 펌을 하는데 손이 자꾸 떨려와서 롤도 말아지지가 않고 고무줄 끼우기도 안되더라구요. 그날 엄청 혼났지요. 10년 욕먹을 걸 그날 다 먹은 것 같았어요(웃음). 같은날 입사를 한 친구와 술을 먹고 미용업을 계속 해야할지 고민을 했는데 그 친구가 조금만 더 버텨 보자라는 말에 2년을 더 꿋꿋이 더 버텼어요."

 

3년여 서울에서의 미용업계 생활, 용환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다. 모진 훈련과 핀잔은 그나마 견딜만 했는데 기술이 향상되질 않았다. '그래 나에겐 재능이 없는거야. 이 길은 내길이 아니다. 그만두자.'

 

부도 그리고 이벤트 업계 진출

 

2006년 말 서울을 탈출하듯 급히 내려왔다. 하면 할 수록 헤어디자인 쪽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지나간 3년을 시간 낭비했다는 자괴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만둔다고 상의도 제대로 못하고 도망치듯 내려왔어요. 당시에는 3년을 허비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바보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허무하다고 느껴졌었는데... 한참후 뒤를 되돌아 보니 그저 하나의 추억이더라구요. 그런 귀한 경험은 돈주고 살수도 없잖아요."

 

가족들과 상의 끝에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목재소에서 용환은 일하기로 했다. 탄탄대로를 걷고있던 아버지 사업체였지만 가급적 스스로 독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마음이 편할리는 만무했다.

 

"아버지와 같이 일한다는 게 되게 불편했지만 마땅히 할 꺼리가 없어 우선 목돈을 만들때 까지만 붙어있자고 스스로 다짐을 했어요. 당시 제가 했던일은 영업이었었는데 국내 도급순위 30위권 내에 있는 S건설사에 목재 납품 건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근데 망하는 것은 한순간 이더라구요. 목재를 다량으로 수입한적이 있었는데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손실은 고스란히 아버지 몫으로 남겨져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장례업에 투자한 지분도 사기를 당하셨구요."

 

아버지 사업체가 부도나면서 용환은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모아둔 조금의 돈을 지인이 운영하는 이벤트 회사에 투자를 하면서 공동 운영을 하게 되었다.

 

이벤트 업계 이 길도 아니다

 

익산에 위치한 이벤트 회사, 규모는 작았지만 재기를 하는데 규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용환의 보금자리는 군산이기 때문에 공동 투자자 보다 좀더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여기 저기 오픈하는 가게가 어디인지 알아봐야 하고 도우미들 연결시켜주고 행사용 도구 챙기고 많이 분주했다.

 

바쁜 것에 비해서 수입이 너무 적었다. ' 결혼을 해야하는데 이런 벌이로는 결혼은 고사하고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밥도 제대로 못사주는 것 아니야.' 돌파구가 필요했다.

 

"1년동안 진짜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도 돈이 모여지질 않았어요. 인건비 줄이려고 제가 직접 발품 팔아가면서 명함 뿌리고 그렇게 영업을 했구요. 아무리 바빠도 행사장 이벤트 준비도 제가 직접 하고 했는데도 주변 경쟁업체 많아서 저가 수주를 받고 그러니깐 수익이 안났어요. 더이상 버틸수가 없어서 지인형 한테 이야기 했어요. '그만 두겠다' 라고요."

 

간절함으로...

 

용환은 막막했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기댈수는 없어서 어렵게 꺼낸 말 "그만두겠다." 이말을 스스로 책임을 져야했다. 당시 용환이 갖고 있었던 현금은 이벤트 회사에 투자해서 돌려받은 천만원 뿐이었다.

 

"막막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는데 돈이 나올데가 없잖아요. 바쁘기는 밥먹을 시간도 없이 오지게 바쁜에 들어오는 돈은 없으니.. 투자한 돈 돌려받고 집에서 백수로 지내는 중에 우연찮게 생활지를 봤는데 '판촉물 광고사무실 임대' 라는 내용이 제 눈에 들어왔어요."

 

'보증금 300, 월세 30', 이정도는 용환에게는 해볼만했다. 다만 인쇄용 설비를 갖추는데 막대한 고정 비용이 들어가는게 문제였다. 추가 비용 지출에 여력이 없었던 용환은 판촉물 외주에서 받아서 판매하는 전략을 썼다. 내것이 아닌 것을 판매하는 유통이었기 때문에 마진은 적었지만 자신이 할 수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저는 지금도 말을 잘하는 영업엔 도통 자신이 없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버지 목재소에서 일할때 영업을 했던 기억을 더듬었어요. 많이 찾아가서 얼굴 익히고, 상냥하게 말 걸어주고, 뭐 이런거요. 유창하게 말을 못해도 진심만 알아주면 통하더라구요."

 

용환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처음하는 사업이었다. 이제는 혼자서 헤쳐나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지방 소도시인 군산에서 사업을 하는데도 나름 연줄이 필요했다. 먹고사는데 에만 집중을 했지 사회적 관계에는 무관심 했던 용환에게 남은 것은 간절함 뿐이었다.

 

불러주는 곳은 없었지만 없는 길을 만들었다. 무시당하고 투명인간 취급을 당해도 꼭 성공하리라는 간절함으로 고객을 만나고 또 만났다. 간절함과 노력이 제대로 통했는지 2년 전 작은 사무실을 청산하고 지금의 번듯한 사무실로 이사를 왔다.

 

"이정도면 성공하셨네요" 라는 기자의 말에 그가 답했다.

 

"광고업에 나선지가 만으로 7년째 입니다. 광고업을 하면서 부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남들도 조금씩 도와주기도 하고요. 죽을 각오를 하고 바닥을 훑었더니 고객들이 진심을 알아주고 물량을 제게 주더라구요. 소개에 또 소개를 받은 경우도 많구요. 2년전 이곳으로 이사와서 세운 목표까지 도달하려면 아직도 멀었어요(웃음)."

 

관내 기관들과 MOU를 맺고 친 사회적 광고업자로 명성을 얻고있는 원용환 대표. 상냥한 그의 얼굴과 사무실 출입문에 붙어있는 '친사회적기업' 명패들이 정겹게 겹쳐온다. 

 


 

이생곤님 기사 더보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