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군산에서도 ‘이토록 멋진 마을’, 함께 꾸면 달라집니다!
글 : /
2017.01.01 15:20:29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군산에서도 ‘이토록 멋진 마을’, 함께 꾸면 달라집니다!

더불어민주당 군산시의회 의원 강성옥

 

 

햇살은 사람들 가까이에 있고 싶다. 대낮에는 회사나 학교, 아파트의 유리창에도 매달린다.  한겨울이나 장마철에야 대접 받는 신세. 시인 김남주는 달랐다. 햇살에 손을 뻗었다. 볼을 부볐다. 시인은 목에 감기는 햇살을 누이가 짜준 목도리라고 여겼다. 입술에 닿는 햇살은 그녀와 주고받던 옛 추억의 사랑이라고 했다. 창살에 비치는 햇살은 특별했다. 감옥에서는.
        
1990년, 스물세 살 청년 강성옥씨도 감옥에 있었다. 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의 민주당, 김종필의 공화당이 합쳐진 3당 합당 반대 시위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전교조를 지지하고, 철탑에 올라가서 시위하는 ‘우민주철’ 노동자들을 지원했다는 죄목이 따라붙었다. 집까지 들이닥친 경찰은 자고 있는 강성옥씨를 끌고 갔다.

 

“야! 너 숨겨놓고 뭐 먹지? 단식하는 놈이 왜 이렇게 팔팔하냐?”

 

교도관은 말했다. 민자당 해체 촉구 단식 8일째. 운동 시간에 족구를 하던 강성옥씨는 억울했다. 물과 소금만 먹고 지내는데도 처지지 않았다. 그는 형기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 혼거 방에서 여럿이 지냈다. 사회에서 춤꾼이었던 이가 강성옥씨 손을 붙잡고 자꾸 돌리는 통에 춤을 추었다. 면회 온 어머니가 눈물 바람을 하면, 그는 “걱정마세요, 투쟁!”하며 웃었다. 

 

“1987년에 군산대학교 미술학과에 들어갔어요. 그때는 데모 안 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6월 항쟁이 일어났잖아요. 87년 대통령 선거 때, 제가 미술학과 최초로 수업거부를 주도했어요. (웃음) 성적표가 나왔는데 다 F예요. 어렸을 때부터 로봇 만화 그려서 친구들 보여주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림이 좋아서 미대에 갔는데 학점이 부족해서 졸업을 못 했어요.” 

 

강성옥씨가 대학 5학년이던 1991년. 그의 후배들이 학교 안까지 들어와서 사찰하던 안기부(지금의 국정원) 직원을 붙잡았다. 학생회실 한 귀퉁이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한 뒤에야 풀어줬다. 군산대 역사상 가장 많은 전투경찰과 사복경찰들이 학교 근처에서 진을 쳤다. 폭력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강성옥씨는 그 일로 수배자가 되었다.

 

집에도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강성옥씨는 학교 안에서만 자유로웠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학교 밖 세상도 달라졌다. 그는 스물여덟 살에 입대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갔다 온 사람은 현역 입대 불가능, 군산시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소집 해제 뒤에는 군산사랑 청년회, 참여자치 군산시민연대, 미래발전연구소에서 일했다.

 

“결혼하고, 사회인이 된 뒤에는 급식소 봉사를 가끔 다녔어요. 유치원 다니는 저희 큰애보다 어린 애가 엄마랑 반나절을 걸어서 와요. 그 애기가 급식소에서 먹는 밥이 그날 먹는 유일한 밥이래요. 충격을 받았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정치를 해서 애들에게 밥을 먹여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죠. 그런데 그 잔상이 항상 뇌리에 남아 있었어요.”

 

대학에서 제적당했던 강성옥씨는 민주화운동 관련 법령이 생기면서 학교에 복학할 수 있었다. 16년 만에 졸업한 그에게 날아온 또 다른 희소식. 국가에서는 ‘민주화운동 공로자’라고 인정을 해주었다. 2006년, 그는 군산시의회 의원이 되었다. 급식소에서 만난 아이 덕분에 분야는 정확했다. 행정복지위원회에서 일하는 게 당연했다. 

 

행정복지위원회 소속 의원 12명 중 3명은 사회복지사 출신. 거기에 행정복지위원장을 지낸 의원들도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강성옥씨는 문화예술영역인 축제를 자기 분야로 삼았다.  그는 축제마다 참여 인원이 20만에서 30만이라고 하는 통계에 의문을 품었다. 관광버스가 대야에서 군산까지 빼곡하게 서서 사람들을 태우고 있다고 해도 그만큼 될 수 있으려나.

 

“마임축제로 유명한 춘천에 몇 번 갔어요. 광주 충장로축제나 김제 지평선축제도 여러 번 가 봤어요. 그러고나서 제안했죠. 다른 지역에는 없는, 군산만의 축제를 하자고요. 군산은 근대문화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이걸로 축제를 하자고 했어요. 몇몇 사람은 ‘잘못하다가는 친일파 된다’ 고 했어요. 대부분은 제 말을 들으려고도 안 했고요.

 

시정질문도 하고, 군산 시장을 의회에 출석하게 해서 토론도 했어요. 그래도 안 되더라고요. 저는 ‘군산시 축제 발전 조례’를 만들었어요. 너무 많은 군산의 축제부터 정비 하자고 했죠. 자동차 엑스포나 벚꽃 축제도 없앴어요. 축제를 하기 전에 사전 심사를 하고, 끝나고 나서는 사후 평가를 할 수 있는 근거를 조례로 만들었어요.”

 

그러나 군산시는 강성옥씨가 제안하는 근대문화 축제를 부담스러워 했다. “명칭은 새만금 축제, 장소는 근대역사박물관 주변에서 하자”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름과 내용이 따로 노는 축제였다. 군산은 호남 최초로 만세운동을 벌인 곳, 옥구농민항쟁의 역사를 가진 도시. 강성옥씨는 독립군과 미선공, 만세운동 체험 등 항일역사 프로그램을 세부적으로 제안했다.

 

행정을 담당하는 군산시에서 강성옥씨의 제안을 받아줬다. 형태와 내용을 갖춘 축제는 많은 사람을 거쳐서 ‘군산 시간여행축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가 근대문화 축제를 제안하고 시작한 지도 7년. 여행자들은 축제가 아닌 기간에도 군산에 오면, 지난 역사를 볼 수 있다. 백여 년 된 일본식 집을 고쳐서 만든 군산 항쟁관까지 들어섰다. 

 

“수탈당한 역사도 우리 역사예요. 그렇지만 일제 강점기에 호화롭게 산 일본인들의 흔적만 복원하는 것은 경계해야죠. 군산 사람들은 다 빼앗기면서도 일제에 저항 했어요. ‘군산 시간여행축제’에 와서 즐겁게 놀아야죠. 그렇게 웃으면서도 우리는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항일이라는 중심을 가진 축제로 계속 하다보면, 진짜 제대로 된 축제가 될 거예요.”


군산에만 있는 것은 또 있다. 강성옥씨는 전국 최초로 ‘발달장애성인 평생교육 지원조례’를 만들었다. 모르는 분야라서 공부부터 했다. 장평위(발달장애성인 평생교육기관 설립추진위원회) 송영숙 사무국장과 의논하고, 포항시 사례를 참고해서 구체화 시켰다. 특수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 없는 발달장애인들이 자립을 위해 배울 수 있는 평생학습관이 지어지고 있다. 

 

강성옥씨는 ‘아동학대 방지 조례’도 만들었다. 다른 지자체들은 국비만 받아서 하는 사업인데 군산시는 예산까지 보태서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도록 법제화 시켰다. 그가 관심을 두는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아이들과 청소년들.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이 돈 안 들이고 갈 수 있는 수영장을 만들었다. 옛 KBS 자리에 육아종합지원센터가 세워지도록 도왔다. 어린이 극장, 어린이 숲 체험장도 만들었다.

 

“우리 미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에요. 그런데 투표권이 없으니까 예산이나 시설 면에서 확실히 관심을 덜 받죠. 군산이 어린이 행복도시잖아요. 제가 기본적인 방향을 많이 제시했어요. (웃음) 언론에서는 저보고 ‘어린이 행복전도사’라고도 하거든요. 2016년에는 발달장애 친구들이 직접 글로 쓴 감사패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준 감사장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를 보호하는 의정활동을 했다고 해서 받은 두 개의 감사패는 저한테는 정말 특별하죠.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의 의견이 행정에 반영되도록 조례도 만들었어요. 지난 여름 내내 청소년들과 토론해서 청소년 자치권 확대를 위한 통로를 만든 거죠. 핵심은 청소년의 참여예요.”

 

3선의 시의원. 강성옥씨는 많은 조례를 만들었다. 자신이 구상하고 연구한 것을 시의 행정으로 끌어들여서 실현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때로는 전문가들, 때로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과 같이 토론해서 조례를 만들었다. 그게 시의원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민원을 풀려는 시민들의 약 90%는 동네 시의원을 찾는다고 한다. 실생활 정치를 담당하고 있으니까.

 

정치인 강성옥씨는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이다. 2016년 12월 30일 기준, 더불어민주당은 지지율 37%로 1위를 달리는 전국정당이지만 군산에서는 소수정당이다. 군산시의원은 5명뿐이다. 당이 하락세를 겪으며 쪼개진 지난 봄, 강성옥씨는 자리를 지켰다. 남은 이들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더불어 콘서트’를 열고, 총선도 치렀다. 요즘은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정치는 우리의 삶 그 자체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는 플라톤의 말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통해서 확 깨우쳤다. 정치인은 우리의 지배자가 아니다. 우리를 대신하는 존재다. 지켜봐야 한다. 먹고 사는 게 힘들다면서 정치를 외면하거나 혐오하면, 우리의 삶만 고달파진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고령화, 고용불안을 겪은 일본에는 후쿠이라는 지역이 있다. 행복도, 초중생 학력평가, 대졸 취업률, 노동자 세대 실수입, 정사원 비율 등등 많은 것이 1위인 곳. 그걸 담아낸 책이 <이토록 멋진 마을>이다. “다 망했어요”라는 도시를 정치인과 동네 사람들이 바꾸었다. 미래가 있는 도시로 만들었다. 군산도 ‘이토록 멋진 마을’이 될 수 있을까. 강성옥씨는 “가능하죠”라고 했다. 여럿이 행동하면 이루어질 꿈, 멋진 꿈을 꾸고 있다.


​ 

기사 더보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