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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냐 마동석이냐, ‘행복한 시키’로구나
글 : 배지영 / okbjy@hanmail.net
2016.09.01 15:57:2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셰프냐 마동석이냐, ‘행복한 시키’로구나

[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 27] 요리학원에 가다, 헬스도 ‘당긴다’

 

 

 

제규는 일반 고등학교에 다닙니다. 날마다 해야 하는 보충수업과 야자, 두 달 반 동안 고민한 제규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정규수업 끝나면 집에 가서 밥을 하고 싶다고요. 고등학교 1학년 봄부터 식구들 저녁밥을 짓는 제규는 지금 2학년입니다. 이 글은 입시공부 바깥에서 삶을 찾아가는 고등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기자 말  

 

“안 된다고! 늦잠도 실컷 자고, 게임도 하면서 지내라니깐.”

“싫다고요. 일 배우러 갈 거예요!”

“강제규, 방학 왜 하는 줄 알아? 쉬라고 하는 거야. 고등학생이 무슨 알바냐고? 어른 되면 하기 싫어도 하는 게 일이라고.”     

 

여름방학을 하기 전, 제규와 나는 며칠간 같은 얘기를 되풀이 했다. 결론은 안 났다. 줏대 없이 내 편도 들었다가 제규 편도 들던 남편이 “요리학원 가서 배우면 되지”라고 중재안을 냈다. 알바 하겠다고 버티던 제규가 뜻을 꺾었다. 대신, 조건을 걸었다. “집에서 내가 저녁밥 한다고, 요리학원에는 말하지 마요”라고 했다.  

 

7월 25일 월요일, 제규는 ‘한식조리기능사’ 과정을 배우러 학원에 갔다. 집에서 걸어가면 15분 거리. 엄청나게 땀을 쏟을 것 같아서 차로 데려다 주었다. 요리학원의 이영숙 원장님은 제규한테 그날 할 요리인 칠절판과 더덕생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단다. 그러고 나서 바로 시작. 제규는 원장님이 하는 대로 음식을 따라 만들었다.

 

“엄마, 나보고 ‘하늘에서 내린 요리사’래. 진짜 잘 한대요.”

 

학원에서 나오자마자 제규는 말했다. 집에서 밥 한다는 사실을 왜 말하기 싫어할까. 아마도, 원장님이 ‘요리 좀 하는 애’라고 기대할까 봐 숨기는 거겠지. 제규는 집에 와서 바로 자기가 만든 ‘시험요리’ 칠절판과 더덕생채를 내놓았다. “맛없을 거예요”라고 못 박으면서. 재료를 규격에 맞게 썰면서 위생에만 중점을 둔 요리라고 했다. 

 

칠절판은 한국식 월남쌈이라고 하면 되려나. 갖가지 야채와 고기를 얌전하게 손질하고 칼질해서 밀전병(또는 쌈무)에 싸먹는 요리다. 주안상의 전채 요리로 나오기도 한단다. 아들이 한 음식이니까, 나는 꼼꼼하게 다 먹었다. 향이 살아있는 더덕생채는 배불러서 ‘완식’하지 못 했다. 조금 남은 거라도 버리지 않고 냉장고에 넣었다. 

 

“엄마, 오늘은 원장님이 나보고 ‘거침없이 하이킥’이래. 뭘 가르치면 거침없이 잘 한대요.”

 

둘째날, 제규는 말했다.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제규는 아빠가 부엌에서 요리 하는 걸 어깨 너머로 보고 자랐다. 어느 날부터 느닷없이 칼을 잡고 음식을 만들었다. 학원에서 정식으로 배우는 칼질은 다르단다. 정해진 규칙 같은 게 따로 있다고. 지금까지 몸에 배어있던 습성은 싹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에 나오는 52가지 요리. 제규는 학원에서 하루에 두 가지씩 만들었다. 만든 음식의 절반 정도는 집으로 가져왔다. “시험요리는 맛없어요”라고 토를 달았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오이선, 완자탕, 오이숙장아찌, 무숙장아찌 같은 음식을 먹어봤다. 남편은 특히 무숙장아찌에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었다. 

 

“별로 안 어려워요. 우선, 무를 일정한 크기로 잘라야 해요. 자른 무는 간장에 재어서 색깔이 배이게 해요. 그 다음에는 무를 건져내요. 남은 간장은 끓이면 돼요. 끓인 간장은 한김 식힌 다음에 다시 무에 붓고요. 쇠고기가 들어가잖아요. 크기에 맞춰서 썰어서 미리 양념을 해놔야 해요. 간설파마깨참후(간장, 설탕, 파, 마늘, 깨, 참기름, 후추). 미나리 넣고, 깨 넣고 볶으면 돼요.  

 

남편은 “할머니도 무숙장아찌는 좋아하시겠다”고 했다. 그 말을 흘려듣지 않은 제규는 “아, 어떡해!”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서 그랬다. 전전두엽이 폭풍 성장하는 10대들은 늦잠을 자는 게 정상이라고 한다. 그대로 두면 한낮까지도 잔다. 그러나 제규는 토요일마다 일찍 일어난다. 친구들이랑 놀다가 저녁에 온다. 

 

토요일 아침, 제규는 친구 수민에게 “못 놈 ㅅㄱ(수고)”라고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는 아빠랑 둘이서 장 보러 나갔다. 우리 집에서는 거의 쓰지 않던 미나리까지 사왔다. 남편은 냉장고를 정리하고, 제규는 싱크대에 서서 재료를 다듬고 조리를 시작했다. 뭔가가 뜻대로 안 되는지, “으!”, “아으!” 같은 괴성을 질렀다. 남편이 말했다. 

 

“제규야, 음식을 항상 맛있게 할 수는 없어. 아빠도 가끔 맛없게 할 때가 있잖아. 너는 요리를 배우는 수련생이야. 부담 갖지 말고 해. 할머니는 맛있게 드실 거야.”

“영원히 수련생일 수는 없잖아요. 안 나아지면 어떡해요?”

 

내가 나서야 할 타이밍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20여 년간 “간 좀 봐 줘”하며 기대어 온 남편을 ‘지도’해준 맛의 현자. 제규가 만든 무숙장아찌 앞에서 입을 벌렸다. 자신감이 좀 떨어진 열여덟 살 수련생은 무와 고기를 한 가닥씩만 내 입에 넣어줬다. 좀 짰다. 나는 냉철한 평가자. “밥이랑 먹으면 괜찮겠어. 반찬이잖아”라고 했다.

 

남편은 제규가 한 무숙장아찌를 싸가려고 그릇에 담았다. 제규는 미리 담가놓은 오이피클을 유리병에 담았다. 어머니 집에 갔더니 우리 식구들을 기다리던 큰시누이가 “밥 먹자”고 했다. 밥상에는 맛있는 반찬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젓가락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제규가 만든 음식이었다. 맵고 짠 것을 못 먹는 어머니도 그랬다. 

 

밥 먹으면서 큰시누이는 제규랑 음식 얘기를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분야, 그러나 나는 뭘 좀 아는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큰시누이를 알고 지낸 세월이 꽤 길다. 아기 제규가 젖 뗄 때도 밤새 보채니까 큰시누이가 업고 달랬다. 그래도 나는 큰시누이가 잘하는 음식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어느새 제규는 훌쩍 자라서 큰고모와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됐네. 

 

“엄마 없을 때마다 고모가 나한테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음식 하지 말래. 진짜로 취미로만 하래요. 너무 고생한다고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규가 말했다. 스스로도 고민이라면서 어깨에 힘을 팍 줬다. 제규를 흔드는 게 뭔지 안다. 그건 바로 근육. 배우 마동석 같은 몸매에 흠뻑 빠져있다. 6kg짜리 아령을 양손에 들고 날마다 운동한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배길 정도로. 등 근육이 궁금하다면서, 나보고 운동하는 뒷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으라는 지시도 내린다.   

  

“제규야, 그럼 한식 자격증만 따고 그만둘 거야? ‘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 연재도 끝내야겠네?”

“그런 건 아니에요. 한식 하고 나서는 양식, 중식, 일식 자격증 다 딸 거예요. 그 다음에는 복요리 배우고요. 근데 엄마, 헬스 트레이너 해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나는 제규가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도 좋다. 어차피 직업을 여러 번 바꾸며 사는 게 당연해지는 시대. 다그치지 않을 거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면, 덴마크 청년들처럼  대해줄 거다. 그들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자기 진로를 찾게 정부에서 활동비를 대준다고 한다. 나도 그럴 거다. 입시학원 안 보내고 모아놓은 돈이 있으니까.

 

우리 집에 다 와 가는데 해가 지려면 멀었다. 주말이니까, 친구들은 피(시)방에서 게임하고 있거나 편의점에 있을 거다. 제규는 주방장과 헬스 트레이너를 두고 진로 고민할 때처럼 사뭇 진지했다. 집에 가서 말 안 듣는 ‘초딩’ 1학년 동생이랑 싸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친구 수민에게 “지금 갈 수 있음”이라고 연락을 했다. 

 

토요일, 우리 집 통금 시간은 <무한도전> 하기 전인 오후 6시. 제규는 3시간이나 지나서 들어왔다. 잔소리를 하자면 끝이 없다. 관심 있어 해서 사준 책은 제규 책꽂이에 그대로 있다. 한식조리사 필기시험은 닥쳐오는데 책은 지나치게 깨끗하다. 눈만 마주치면, ‘초딩’ 동생이랑 마치 연년생 형제인 것처럼 싸운다. 내 마음을 ‘스캔’한 제규는 엄살을 부렸다. 

 

“엄마, 2학년 여름방학은 너무 맘에 안 들어요. 1학년 겨울방학 때는 엄청 잤잖아요. 근데 지금은 진짜 바뻐. 요리학원 가야지, 헬스 해야지. 동생 밥도 차려줘야지. 엄마가 봐도 안 됐지? 놀 시간이 거의 없잖아요.”

“쳇!”

 

나는 강경하게 나가려고 했는데 웃음이 났다. 가끔 하는 소리, “행복한 시키(자식)”가 튀어나왔다. 제규는 자기 생활을 맘에 들어 한다. 지금은 집에서 밥을 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생기면 그만둘 수도 있다. 엄마가 학교공부 안 하는 아들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도 안다. 직접 겪으면서 자기 길을 가는 고등학생에게는 멋짐이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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