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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할 거 없는’군산? 여기 알면 달라진다
글 : 배지영 / okbjy@hanmail.net
2016.09.01 15:49:33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밤에 할 거 없는’군산? 여기 알면 달라진다    

동네 배회하기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의 섬까지 

 

 


 

 

“야, 일본 왔다고 그러자.”

 

나는 분명히 들었다. 학생들은 동국사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다.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일본식 절집 동국사, 길 건너편에는 히로쓰 가옥이 있다. 두 곳은 늘 사람들이 붐빈다. 그럴 만하다. 군산 여행의 목적은 이국적인(일본적인) 풍경 때문이니까. 일본식 라멘과 일본식 가정식을 파는 식당들이 있고, 유카타를  빌려 입은 여행자들도 눈에 띈다.   

 

일제 강점기 때, 군산은 원주민보다 일본사람이 더 많은 도시. 한해 250만 섬의 쌀이 군산항에서 빠져나갔다. 합일병합을 한 일본은 경복궁을 허물고 조선총독부를 세웠다. 두 번째로 한 일은 토지조사사업. 수많은 토지가 일본인 소유가 되었다. 땅을 빼앗긴 사람들은 수확량의 75%를 내는 소작인 신세. 일본 대지주에 맞서 옥구농민항쟁을 벌인 곳이 군산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는 1930년대의 군산이 나온다. 주인공 초봉이의 남편 고태수가 다녔던 조선은행은 복원되었다. 땅을 잃고 도시로 흘러온 사람들은 월명동 건너편 ‘산말랭이’에 살았다. 그들이 살던 토막집은 근대역사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수탈과 저항의 역사.  박물관 3층에는 그때의 가게들과 임피역, 영명학교 등이 지어져 있다.

 

“여그 학생들이 전부 독립꾼들이었느니라.” 

 

(시)아버지는 박물관 3층에서 영명학교 얘기를 해 줬다. 강점기 때, 아버지의 집 마당에는 일본 놈들이 공출해가려고 사람들한테 뺏어놓은 쌀가마니가 가득했다. 하루 두 번씩, 사람들은 쌀가마니를 지고 ‘왼종일’ 군산항까지 걸었다. 열다섯 살 소년이던 아버지도 그랬다. 박물관 로비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현수막이 새삼 뜨겁게 다가온다.   

 

박물관 앞에서 인력거를 타도 좋다. 인력거는 다다미에 코다츠까지 있는 일본식 숙소 ‘고우당’에 들른다. 두 번째는 히로쓰 가옥. 히로쓰는 포목상과 미두장을 해서 돈을 쪽쪽 빨아들였다. 대대손손 살 줄 알고 일본에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었다. 집 한 채랑 맞먹는 금고도 집 안에 들여서 조선의 온갖 귀한 것을 쓸어 담았다. 인력거는 동국사를 거쳐서 다시 박물관으로 간다. 

 

몇 년 전, 만리장성에 간 적 있다. 인산인해, 우리 식구 사진 속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게 ‘중국식 가족사진’이라면서 웃었다. 2년 전에 <1박 2일> 군산편이 나간 뒤로 이 작은 도시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생긴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근대역사를 보러 군산에 온다. 팥빵을 사려고 기본 2시간은 기다린다. 점심에 짬뽕을 먹으려고 아침부터 줄 선다. 

그래서 나는 게스트 하우스 ‘이웃’에 간다. 히로쓰 가옥 바로 옆집이지만 골목을 돌아가야 한다. 숙박 손님이 아니라도 괜찮다. 누구든 대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이웃’의 발코니에 올라가 본 사람은 “우와!” 감탄한다. 순식간에 기분이 달라진다. 히로쓰 가옥이 한눈에 보인다. 뙤약볕이 고약한 날에도 일본식 정원의 나무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무조건 함께‘이웃’에 간다. 발코니에 앉아서 여여한 시간을 보낸다. 아쉬운 건 커피. ‘고우당’이나 히로쓰 가옥의 앞집 격인‘여흥상회’에서 사가면 된다. 운 좋은 날에는 ‘이웃’의 실내를 들여다본 적도 있다. 거의 100년 된 집, 주인장들은 옛 들보와 서까래를 그대로 살려서 집을 고쳤다. 운치도 있고 세련미도 있는 숙소다.

 

‘이웃’에서 죽치고 있다가 가는 곳은 ‘다다나무가 있는 골목길’이다. 2년 전 봄날, 태어나 처음으로 군산에 온 친구를 만났다. 당연히 히로쓰 가옥, 고우당, 초원사진관, 이성당에 갔다. 월명동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식 집을 구경하면서 걸었다. 욕조에 채전거리를 기르려고 채비 중인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 마주친 곳이 ‘다다나무가 있는 골목길’.

 

“우와!”

 

골목길 담장으로 드리워진 벚나무 한 그루에 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옆에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까지 있었다. 나무의 힘은 강력했다. 밥벌이하고, 애들 키우고, 살림하는 아줌마들에게 소녀 감성을 소생시켜 주었다. 우리는 너무 좋다고 팔짝팔짝 뛰었다. 한없이 건방져지고 말았다. 거기 주인도 아니면서, 나는 ‘다다나무가 있는 골목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근사한 건 함께 보고 싶다. 동생 지현과 꽃차남을 데리고 날마다 갔다. 골목에서 놀다가 그 집을 산 주인도 만났다. 집안에 큰 나무가 있으면, 사람 기가 빨려서 안 된다고 베어내라는 사람도 있단다. 그는 달랐다. 골목 사람들도, 가을에 낙엽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면서 ‘은행나무집’이라고 부를 거란다. 돌아오는 길에 지현은 ‘다다나무’에 대한 추리를 했다.  

 

“꽃이 지나치게 이쁘다. 원래 군산은 4월 둘째 주나 되어야 벚꽃 피잖아. 추운 도시야. 지금은 3월 말인데 왜 쟤만 피었을까? 저 나무 밑에 혹시 다른 거 있는 거 아닐까? 옛날에 유난히 탐스럽고 맛있는 복숭아나무나 배나무 있지. 그 아래 파 보면, 주인이 함부로 죽여서 파묻은 시체가 있었잖아. 사람 뼈에 인이 있어서 유난히 잘 된 거였잖아.”

 

아무리 먼 곳에서 왔어도, 내 친구들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20대 청춘남녀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군산에 숙소가 없어서 찜질방에서 잤다”는 하소연은 안 해도 된다. 요 몇 년 사이에 수십 곳의 게스트하우스가 생겼고, 그 주인들은 ‘펀빌리지협동조합’ 활동을 한다. 덕분에 게스트하우스에 묵어가는 손님들은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어디에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 큰길을 건너면 ‘밥하지마’ 식당이 있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같은 구조다. 주인이 일하는 주방을 둘러싸고 손님들은 ‘ㄷ’자 테이블에 앉는다. 주 메뉴는 쇠고기뭇국, 가격은 4000원이다. 질 좋은 한우 쇠고기는 따로 공급 받는 곳이 있고, 쌀과 채소는 시가에서 농사지은 걸 가져다 쓴다.

 

‘밥하지마’ 식당의 대표 이근영씨는 ‘연예인’이었다. 강변가요제에서 입상을 했고, 가수 김광석씨와 ‘깊은 밤 짧은 얘기’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방송사의 작가, 시립극단 배우, 문화관광위원회 소속의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전주세계소리축제 팀장, 한옥투어 기획, 달빛 음악제 등 문화 관련 일을 해왔다. 고향에 와서 정착한 건 지난해이다.

 

“내 꿈이 쉰 살에 은퇴해서 고향에서 국밥집 하는 거였어요. 열일곱 살이었는데 굉장히 오만한 꿈이었지. 그때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될 줄 알았어요. 돈도 많이 벌고, 세계여행도 하고, 쉰 살이면 다 이룰 줄 알았지. 그때 생각에 오십 살은 황혼이었거든요. 국밥집 하면서 책 쓰고 사는 게 꿈이었는데 말이 씨가 됐나? 지금은 맛있다는 소리가 진짜 듣기 좋아요.”

 

이근영씨는 식당과 동시에 ‘시간여행자 파티’도 준비했다. 식당 개업한 날에 바로 파티를 열었다. 군산에 온 여행자들이 하룻밤은 자고 가야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된다. 칫솔도 사고, 택시도 타고, 밥도 네 끼 정도는 먹게 되니까. 근데 젊은 여행자들은 “저녁에 할 게 없어요”라면서 돌아간다. 밤에 파티를 하면,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라도 자고 가겠지.

 

“파티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20대 초반이에요. 매주 40-50명의 젊은 애들을 만난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환상적이에요. 나는 파티 상을 차리고, 오프닝 하고, 군산도 소개해요. 애들끼리 만나서 서로 얘기하느라 춤추고 그런 거는 없지. 참가비는 만 원. 오늘(7월 30일)이 87번째 파티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해요. 식당은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고, 주말에는 오후 5시까지만 문 열어요.”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밤 자고 일어나서는 동선을 확대해 보자. 월명공원에 가면 호수를 낀 산책길이 있다. 점방산 (135.5m) 꼭대기에 올라가면 서해 바다를 볼 수 있다. 그 다음 갈 곳은 은파. 버스킹 공연도 있다. 어느 계절에 와도 좋다. 여름에 온 여행자들은 주로 물빛다리의 야경을 본다. 군산 사람들은 운동화를 신고, 호수를 낀 산책로를 걷는다.   

 

제주도 간다고 모두 마라도에 갈 수는 없다. 군산에서는 선유도가 그랬다. 배 타고 들어가니까 날씨가 중요했다. 통째로 하루를 써야 했다. 그렇게 도착하면 <1박 2일>에 나온, 어선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기도하는 손 모양 등대가 있다. 선유도와 장자도를 잇는 장자대교가 있고, 선유 1구 몽돌해수욕장 옆 작은 섬에는 산책로가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섬을 여행하는 젊은이들이 있고, 멍 때리고 바라볼 수 있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다.  

 

“어릴 때, 가끔 한 번씩 배 타고 군산 나오면 놀랍지. 차가 많이 다니니까. 섬에도 차가 다니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는데, 30년간 생각하던 게 현실이 되니까 엄청 좋네요.”

 

무녀도 1구 출신인 조영민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7월 5일, 군산 신시도에서 무녀도 2구까지 놓인 도로가 개통되었기 때문이다. 8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섬 신세를 면한 곳. 올 여름에 당신이 군산 선유도에 간다면, 특별한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서 가졌던 염원을 이룬 사람들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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