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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하나짜리 자전거가 그의 가슴에 들어온 순간!
글 : 배지영 / okbjy@hanmail.net
2016.06.01 17:37:29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바퀴 하나짜리 자전거가 그의 가슴에 들어온 순간!

청춘남녀 인터뷰 번외 서른여섯에서 마흔까지외발자전거 전문가, ‘키다리아저씨김재인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은 물질이 아니다. 질량과 부피가 없다. 그런데도 말에는 촉감이 있다. 보드랍게 감기는 말이 있다. 날아온 돌멩이처럼 가슴을 때리는 말도 있다. 고등학생 재인은 ! 키 크다라는 말이 자신에게 덤벼드는 것 같았다. “근데 내 옆에는 오지 마. 비교 되니까라는 말은 재인을 후벼 파는 듯 했다.

 

중학교 졸업할 때, 재인의 키는 173cm. 고등학교 졸업할 때는 193cm 였다. 10대 소년은 큰 키를 단점으로만 여겼다. 몸에 맞는 옷을 사는 게 쉽지 않았다. 발에 맞는 신발 구하기도 힘들었다. 조금만 까불어도 금방 사람들 눈에 띄었다. 할 수 없이 얌전하게 학교만 다닌 재인,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장래희망도 없었다.

 

그때는 키 커서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위축됐어요. 속으로는 당신이 나처럼 커보세요. 그게 좋은지라고 했죠. 남들보다 큰 것 때문에 인생이 더 힘든 것 같았어요.”

 

재인씨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육군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어느 날, 그는 내무반에서 큰 키를 오므리고 앉아서 신문을 읽었다. 일본에 있는 어떤 기업의 사장이 외발자전거를 타고서 출·퇴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재인씨의 마음은 울렁거렸다. 호기심이 일었다. 신문에 난 사람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서 외발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제대한 그는 잠실에 있는 한 놀이공원에서 알바를 했다. 공연 팀에서 레이저 쇼를 돕는 일이었다. 일터 사람들은 재인씨를 마음에 들어 했다. “직원으로 함께 일하면 어때?”라고 제안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밤마다 퍼레이드를 하는 놀이공원. 레이저 쇼를 마치면 오후 10, 버스 타고 남양주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었다.

 

놀이공원 공연 팀에 외발자전거 타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거 보면서 나도 군대 있을 때 타고 싶었지라고 했던 게 생각났어요. 그때는 외발자전거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죠.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은 때라서 검색해서 물어볼 데도 없었고요. 무작정 전화번호부를 보고 자전거 가게마다 전화를 했죠. (웃음) 외발자전거 파느냐고요.”

 

중국에서 생산한 외발자전거가 있었다. 재인씨는 8만 원을 주고 한 대 샀다. 외발자전거 안장은 무척 딱딱했다. 안장 테두리에는 점프하기 좋게 손잡이가 있어야 한다. 없었다. 굵은 철사로 된 손잡이만 있을 뿐이었다. 외발자전거를 타고 뜀뛸 때마다 헐거워졌다. 넘어질 때마다 구부러지더니 하루 만에 망가지고 말았다.

 

재인씨는 직장에서 날마다 외발자전거 타는 전문가들을 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잘 타요?” 라고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 몇 개월간 혼자서만 타다가 한국 외발자전거 동호회를 알게 됐다. 들뜬 마음으로 정기모임에 갔더니 동호회를 운영하는 사람은 재인씨도 아는 얼굴. 놀이공원에서 공연하는 사람이었다.

 

동네 공원에서 꼭 외발자전거를 연습하고 출근했어요. 주말에는 올림픽공원에서 동호회 모임을 한 뒤에 출근했고요. 새로 태어난 느낌인 거예요. 사람들이 키 얘기를 해도, ‘크니까 좋지요하며 웃을 수 있게 됐어요. 대중 앞에서 말할 때 떨지도 않고요. 그 전까지의 인생은 별도의 인생이었고, 외발자전거를 타면서야 제 인생의 본 막이 오른 느낌이었죠.”

 

재인씨는 잠실의 놀이공원에서 무대감독 일을 10여 년간 했다. 레이저 쇼와 퍼레이드를 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 재인씨 스스로도 재미있었다. 그의 외발자전거 실력도 국내에서 손 꼽아줄 정도가 되었다. 일과 취미생활이 잘 어우러진, 걱정 없는 삶이었다. 문득, 재인씨는 다른 물에서도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기도 끝자락과 붙어있는 충북 음성. 재인씨는 음성문화예술회관의 무대감독이 되었다. 6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는 주로 주말 공연을 했다. 평일에는 한가할 뿐이지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예술회관이 자리 잡고도 재인씨는 한 달에 사나흘만 쉬었다. 사람들이 외발자전거 강습을 받고 싶다고 해도 주말에 일이 많은 재인씨는 응할 수가 없었다.

 

음성문화예술회관에서 6년간 일하고 그만뒀어요. 저는 항상 외발자전거 타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근데 이쯤에서 후배들을 키워내지 않으면 누가 할까고민이 드는 거예요. 전문적으로 할 사람들을 만들어야죠. 어린 친구들이 할 수 있게 보급하고 싶으니까요. 일본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외발자전거를 가르쳐요. 방과 후나 정규과목으로요.

 

외발자전거는 진짜 좋은 운동이에요. 허리를 구부정하게 타면, 바퀴가 하나니까 쓰러질 거 아니에요? 척추에 좋아요. 핸들이 없기 때문에 허리를 틀어서 방향을 바꾸니까 허리운동에도 좋고요. 균형감각도 좋아지죠. 장점이 많아요. 너무 재미있고요. 지금 우리나라에도 외발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3천여 명 정도 돼요.”

 

재인씨가 직장을 그만 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영어! 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2004년부터 그는 외발자전거 세계대회인 유니콘 (유니 사이클 콘테스트)에 참가했다. 처음 출전한 일본 대회, 외발자전거를 타고 숙소 주위를 다니는 외국인들을 보았다. 재인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구나하면서 감격했다.

 

그는 2년마다 세계대회에 참가 했다. 처음에 일본에서 만났던 외국 선수들을 스위스, 덴마크, 이탈리아, 캐나다 대회에서도 만났다. 10년을 넘게 봐 온 외국 선수들. 재인씨는 반가워서 먼저 헬로라고 했다. 외국 선수들도 재인씨 인사를 받고는 말을 했다. 영어로. ~. 알아들을 수 없는 재인씨는 쏘리하면서 자리를 떴다.

 

한 번 참가해도, 영어를 잘 하면 외국 친구들이랑 계속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해요. 그래서 2014년에 음성군청 그만두고 영어학원에 갔어요. 하루 내내 외국 방송 듣고, 똑같이 발음하면서 반복훈련을 했어요. 1년간 다녔는데 중간에 세계대회가 열렸어요. 저는 일부러 한국인이 없는 숙소에서 묵었는데 그 친구들 말이 들리더라고요. 뭔가 알아듣는 기분, 굉장했죠.”

 

 

세계대회는 열흘 동안 열린다. 모든 경기를 외발자전거를 타고 한다. 재인씨는 세 번째로 출전한 덴마크 대회부터 상을 받았다. 자전거를 타면서 기술을 선보이는 기술레이싱에서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처럼 애국가는 안 울리지만 태극기를 흔들면서 세리머니를 했다. 다른 종목에서도 은메달을 네 개 더 딴 그는 30(연령제한이 없음)에서 종합 2위를 했다.

 

후배들을 잘 기르고 싶다는 재인씨, 아직 세계대회에서 이루고 싶은 분야가 남아있다. 피겨스케이팅처럼 음악을 켜고 하는 예술 경기에 참가해 동메달이라도 따고 싶다. 3분짜리 음악에 맞는 근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외발자전거를 타고 연기 하고 싶다. 재인씨는 아직도 기억한다. 세계대회에서 처음으로 예술 경기 하는 것을 본 날을.

 

신세계를 본 느낌이었어요.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유치원생하고 초등학생들 경기였거든요. 한국에서는 몇 년을 타도 저 정도는 할 수 없는데... 어린 친구들이 벌써 그렇게 하니까 너무 부러웠어요. 질투까지 났어요. 옆을 보니까 한국에서 같이 자비(선수들은 모두 자비로 간다) 들여서 온 친구도 울고 있는 거예요.”

 

올해 2, 재인씨는 아는 사람도 없는 군산에 정착했다. 그 전에 군산은 여행 삼아서 온 게 다였다. 재인씨는 몇 곳의 식당과 카페에 갔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가게를 해도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 좋았다. 더구나 군산은 서울과 그리 안 멀다. 충청도나 전라도 곳곳에 강습 하러 가기에도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50%는 서울·경기 지역에 산다. 외발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수도권 지역에 압도적으로 모여 있다. 어느 날, 지방에 사는 사람이 외발자전거를 배우고 싶다면 어떡해야 할까. 선생님을 찾아 서울로 가야 한다. 그래서 재인씨는 인프라가 거의 없는 지방으로 내려가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군산에 오고 나서 신시도초등학교 야미도 분교에 전화를 걸었어요. 무료로 외발자전거를 가르쳐주고 싶다고요. 학생이 세 명이더라고요. 틈날 때마다 해보면 2주 만에도 탈 수 있거든요. 근데 야미도 분교는 운동장이 평평하지 않은 흙바닥이에요. 제가 가는 날마다 비가 와서 땅이 푹푹 꺼져서 아쉬워요. 은파 호수공원에서도 강습을 해요. 주말에는 서울 가서 강습도 하고요. 다음 학기에는 군산교육청에 등록해서 방과 후 강사도 해야죠.”

 

재인씨는 최고의 강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외발자전거 할 거야? 김재인한테 조언이라도 구해 봐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재인씨의 야망은 유명 개그맨도 일찌감치 알아봤다. <개그콘서트>달인코너 마지막 회에서 김병만씨는 외발자전거의 달인으로 나왔다. 금방 배우고 따라하는 병만씨에게 외발자전거를 가르쳐준 사람이 재인씨였다.

 

재인씨는 지금 낯선 도시에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있다. 땅이 꺼져라 앞날 걱정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근심을 안고 산다. 걱정해 봐야 불안만 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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