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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욱 군산예총 회장에게 듣는 ‘장금도 명인’ 이야기
글 : 조종안 / jay0810@hanmail.net
2016.03.01 10:36:0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국내 유일의 민살풀이(수건 없이 추는 살풀이춤) 전승자 장금도(張錦桃) 명인. 그의 춤 세계를 재조명하는 행사(공연, 사진전시, 토론회 등)가 전북 군산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장금도는 일제강점기 군산 소화권번(일제강점기 기생조합)을 졸업한 이 시대의 마지막 예기(藝妓)이다.

 

이번 행사는 <마지막 예기 장금도의 춤 재발견>이란 타이틀로 오는 326() 오후 4시 군산시 장미동 장미공연장미즈커피(-카페)’에서 열린다. 이는 장금도 명인의 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추진 사업의 하나로 사단법인 군산 예총(회장 황대욱)이 주최하고 군산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매거진군산>(대표 이진우)이 주관한다.

 

장미공연장 공연은 신명숙(57) 교수 초청공연, 장금도의 일생을 조명한 동영상 상영, 즉석 토론회 순으로 진행된다. 미즈커피에서는 장금도의 발자취와 일제강점기 권번 관련 사진 30~40점이 1개월(326~425) 동안 전시된다. 신 교수는 60~70년대 리틀엔젤스무용단 출신으로 1999년부터 장금도 명인과 사제의 연을 맺어오고 있다.



 

군산의 마지막 예기 장금도 발자취

 

장금도(89)1928(호적 1929) 지금의 군산시 중앙로 2가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때 군산 소화권번(4년제)에 들어가 회초리를 맞아가며 예의범절과 가무(歌舞)를 익혔다. 최창윤에게 승무, 김백룡에게 부채춤, 도금선에게 민살풀이를 전수받는다. 열다섯에 군산극장에서 초연(初演)을 하였고, 군산 명월관 무대에서 치러진 예기 자격시험에서 소리()와 춤 모두 수석으로 졸업한다.

 

어린 나이에 가무(歌舞)로 군산을 주름잡았던 장금도. 그는 일제의 처녀공출’(일본군 위안부)을 피해 열일곱에 결혼하면서 활동을 접었다가 광복 후 재개한다. 서울에서도 활동했던 그는 스물아홉에 소리와 춤을 작파하고 집에서 숨어 지낸다. 울타리 안에 꼭꼭 갇혀있던 민살풀이는 정범태 사진작가의 집요한 추적과 설득으로 장금도가 1983년 국립극장 <명무전>에 초대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 후 간간이 중앙 무대에 오르면서 해외 초청공연도 다녀온다.

 

대표작으로 '한국인의 넋이 담긴 민족의 춤' 명인전(1990), 1회 서울세계무용축제 명무 초청(1998), 내일을 여는 춤-우리 춤 뿌리 찾기(2002),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2004), 여무(女舞) '허공에 그린 세월'(2004),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 특별출연(2005), 8회 서울세계무용축제 초청 '전무후무'(2005), '전무후무' 프랑스 초청공연(2006), ''-이 땅의 숨은 춤-(2011), 작별의 춤 해어화(2013) 등을 꼽는다.

 

지난 18일 오후 군산 예총 사무실에서 황대욱(70) 회장을 만났다. 황 회장은 장금도 관련 행사를 통해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우리 전통 문화예술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아래는 황 회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전임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등 우여곡절 속에 출발해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난 2015년은 다사다난했던 해였다. 어려움 속에서도 업무를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처리해서 안정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과분한 격려도 받았다. 중국 산동성 위해시와 예술교류 협약, 충남 서천 예총과 교류협약, 군산 미군비행장 장병 위문공연 등 사업도 다양하게 진행했다. 성원을 아낌없이 보내준 시민과 회원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취임사에서 회장실을 '예술인 사랑방'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변화는?

회장을 맡으면서 창작하는 예총, 혁신하는 예총, 소통하는 예총 등 예술인이 즐겁고 시민이 행복한 예총을 만들겠다는 슬로건으로 출발했다. 효율적인 운영과 목표 수행을 위해 사무실을 사랑방으로 만들었는데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어 기대감이 높다. 주변 사람들이 군산 예총이 변화되고 있다고 말할 때 보람을 느낀다.”

 

장금도 명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지정위해 관심 기율여야

 

-올해 계획된 핵심 사업 몇 개 소개한다면?

작년보다 사업이 늘어 매월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의미 있는 사업으로 장금도 관련 공연 및 사진전(3), 중국 심양시 방문공연(4) 군산 미공군전투비행단 위문공연(6) 등이다. 9월 말쯤 개최될 군산 시간여행 축제 추진위원장을 맡아 더욱 바쁠 것 같다.

 

그중 장금도 관련 행사는 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추진사업의 하나로 신명숙 교수를 초빙해 공연(민살풀이, 부채춤, 화관무 등)을 가질 예정이다. 신 교수 역시 50년을 춤과 함께 살아온 최고의 춤쟁이이다. 그는 우리 전통예술을 해외에 알리는 리틀엔젤스 무용단 출신으로 현재는 대진대학교 무용학부 학부장을 맡고 있다.

 

사진전시회에는 20대 장금도 모습을 비롯해 동료들과 여름 피서지에서 찍은 기념사진(30), 친목계원들과 속리산 법주사에서 찍은 사진(40), 시골 부잣집 환갑잔치 마당 사진, 회갑연에 초대되어 헌수를 도와주는 모습,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 중앙무대와 해외공연 모습, 군산 소화권번 소속 기생들 단체 사진, 일제강점기 일본식 요정 등 그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사진 30~40점을 선보인다.”

 

- 이번 행사는 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추진 사업의 하나라고 했는데?

장금도 명인은 15세 때 군산극장에서 초연할 정도로 기예(技藝)가 특출했다. 그는 권번에서 회초리를 맞으며 소리와 춤을 배운 생짜 기생으로 군산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1983년 서울 국립극장 <명무전>을 비롯해 다양한 중앙 무대에 초대됐고, 프랑스, 일본 등으로 초청공연도 다녀왔다. 그처럼 유명한 분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먹고 살기 위해 가무를 배워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춤꾼이 되기까지, 그의 일생을 자료를 통해 접하였다. 한 대목 한 대목 읽으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도 될 만큼 가슴 절절한 사연을 지닌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험난했던 시절 우리 전통예술을 전승하면서 군산을 민살풀이와 부채춤의 본고장으로 만든 자랑스러운 예기이자 예술인이다. 그는 구순을 앞두고 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군산시와 시민의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민살풀이, 부채춤 모두 귀한 선물이자 문화-관광콘텐츠

 

-장금도의 춤을 통해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전통 예술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군산에는 명월관을 비롯해 많은 고급요릿집(요정)이 있었다. 그곳이 예기들의 공연 장소가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시절 요정이 지금의 예술회관 역할을 하였다. 광복 후 장금도 명인이 요정으로 놀음(공연) 나갈 때 인력거 두 대가 필요했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찡했다. 다른 인력거에는 젖먹이가 타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 사랑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예기를 기생 출신이라고 천시하는 분위기가 지금도 남아 있는 것 같다.

기생을 말하면 창기(娼妓·삼류 기생)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어느 분야든 부정적인 면은 존재하므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생들이 천 년을 이어온 교방문화, 즉 우리의 전통 예술을 계승 발전시킨 공적을 무시할 수 없다. 군산 소화권번 출신 예기들이 1930년대 초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공연했다는 신문 보도는 당시 지방 예기들의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예기들은 일제강점기 대중스타였다. 예기 출신 가수와 배우가 많았던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한제국 시절 매국노 이지용(을사오적)을 꾸짖고,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 나서는가 하면 기미년(1919) 삼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는 등 논개 정신을 계승한 의기(義妓)도 많았다. 1920~1930년대 군산 기생들도 금연운동, 토산품 장려, 이충무공 사업 성금 기탁, 경영난에 처한 조선인학교 돕기 자선공연 등 다양한 사회운동을 펼쳤다는 자료가 전해진다.”

- 국내 무용 전문가들은 민살풀이 본고장은 군산이라고 말한다. 그에 대한 생각은?

예술을 하는 시민의 한사람으로 자부심을 느낀다. 부채춤 고향도 군산 소화권번으로 신명숙 교수가 장금도 명인의 춤사위에서 발견했다고 전한다. 민살풀이도, 부채춤도 아주 귀한 문화-관광콘텐츠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숙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번 장금도 관련 행사도 기생에 대한 잘못된 인식 전환과 자긍심을 갖는 동기부여가 됐으면 한다.”

 

군산의 예술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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