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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군산이 만난 사람 신영대 전직 청와대 행정관
글 : 오성렬 / jay0810@hanmail.net
2016.03.01 10:06:4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매거진군산이 만난 사람
감사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글 오성렬(주간)

치기어린 홍안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던 소년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자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남들은 취업에 매달릴 때 그의 눈에 띈 것은 군부 독재에 유린당한 바깥세상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는 그저 무늬 만이었고 주권자인 국민은 통치와 탄압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의 가슴은 뜨거워졌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철벽같은 군사 독재에 저항했다. 수배령이 떨어지고 구속되기도 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돈 버는 일에는 재주도 없었고 그보다는 인간이 인간 대접을 받고 국민이 국민대접을 받는 세상으로 바꿔보자는 게 그의 꿈이었다.

 

이후 군부 독재가 물러가고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정부 요직에서 행정 경험을 쌓고 잠재된 능력을 펼치게 된다. 언젠가 정계에 진출하여 정직하고 올곧은 정치로 불신과 조롱의 대상인 현실 정치판을 바꾸겠다는 만만찮은 야심의 군산 토박이. 며칠 전 매거진군산을 방문한 신영대 예비후보는 알려진 대로 수수하면서도 맑고 순수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반갑습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지만 만남은 첨인데 인상
이 참 좋으시네요. 원래 군산 분이신가요?
네. 군산 토박이로 66년생인데 주민등록은 68년생으로 되어 있어 나이가 두 개입니다(웃음). 학교는 중앙초교, 동중, 제일고를 졸업하고 전북대와 대학원에서 경영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도 수료했습니다.

 

경영학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국어의 고문 해석을 좋아해서 국문과에 진학하는 게 목표였는데 집안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졸업 후 취업의 어려움을 들어 무엇보다 담임선생님이 만류했고 아이러니한 것은 국어선생님의 만류가 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록금도 저렴하고 비교적 취업이 유망하다는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경영학 전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릴 적 성장배경을 듣고 싶은데요.
저 어릴 적 아버지는 유리병을 만드는 공장 노동자셨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입으로 불어 병을 만드는 힘든 방식이었기 때문에 생산에 한계가 있어 야근을 자주 하셨고 아버지의 손과 발에는 화상 자국이 가실 날이 없었습니다. 공장을 그만 두신 뒤에도 연탄가게, 동네 슈퍼, 우유대리점 등을 하시며 저희 3남매를 가르치시기 위해 참 성실히 일하셨지요.

1980년도 중학생이던 당시 군산대에는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였던가는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수많은 국민을 죽였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고 어떻게 해서든 독재를 타도해야 된다는 의협심이 들끓었습니다. 결국 1988년도 군부독재 세력에 의해 구속되었는데 그때가 마침 아버지의 회갑연을 앞둔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식이 감옥에 있는데 무슨 잔치냐며 회갑연을 접으시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큰 불효를 끼치고 말았지요. 후에 제가 집행유예로 석방되고 나서 부모님께 조촐한 여행을 시켜드렸는데 그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버지의 술잔을 받으며 들었던 말씀이 귀에 생생합니다. “학생운동 하는 건 좋지만 또 다시 네가 감옥에 가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저는 말씀을 따르겠다고 약속했고 저를 인정해주신 것이 너무도 고마워 힘이 났습니다.

그러나 결국 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주변의 권유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총학생회장에 출마하였고 당선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또다시 저는 수배명단에 올랐고,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께서 암 선고를 받기에 이릅니다. 아버지께서 운명하시던 날 저는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했고 어머니로부터 “네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 네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단 말씀을 하셨다” 는 얘길 듣고 울컥 목이 메었습니다. 불효를 끼친 죄송함으로 저는 지금도 아버지가 문득문득 그립습니다.

졸업 후 첫 직업은 무엇이었나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군에 입대했는데 신검으로는 현역입영대상자였으나 시위와 구속 전력 때문에 단기사병으로 오식도에서 1년6개월 근무했고, 제대 후에는 군산에서 청년들과 지역 운동을 시작했는데 첫 직장이 나라사랑군산청년회였습니다. 월급 나오는 곳이 아니다보니 밤에는 학원 강사로 낮에는 청년회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공직에 몸담게 되었는데 전북자동차기술원 초대 행정팀장으로 신축설계 등 현재의 기술원 기초를 다졌다고나 할까요,

 

그러다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입법을 경험하기도 했는데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15년 지기 한병도 의원과 국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 의원과 같이 고민하면서 열정적으로 노력한 끝에 대표 발의한 중소기업창업지원법, 기업 활동 규제완화에 대한 특별조치법, 농어촌 정비법 개정안 통과를 지켜볼 때는 입법기관의 일원으로서 자긍심이 컸고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한계를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예산과 감사는 한낱 통과의례에 불과했고 정부입법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와 국회의 혁신이 왜 필요한지를 절감한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재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청와대 보도지원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험은 제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국가의 주요정책이 조율되고 결정되는 막중한 위치인 청와대는 당시 언론과의 관계가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그 결과 언론에 의해 왜곡된 국가정책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했는데 예컨대 국가중장기 전략인 비전 2030이 단순한 대선용 선심성 정책으로 왜곡되거나, 대통령의 별 뜻 없는 가벼운 농담 한마디가 진중한 정책기조를 설명하는 발언으로 왜곡되기도 했으니까요. 소통의 중요함을 절감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원칙과 소신도 소통하지 않으면 불신과 오해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체득하였습니다. 소통의 대상은 결국 국민이요 지향점은 역사이기에 원망의 화살을 국민에게 돌리기 이전에 우리의 무엇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먼저 돌아보고 자기 통찰과 혁신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 것은 소중한 경험으로 남고 있습니다. 혁신은 완성형이 아니고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에서 본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분이었는지, 그리고 일화가 있다면.
정말 소탈하셨고 직급을 떠나 당사자와 직접 소통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행정관으로서 제가 기안한 문서도 여러 결재 단계를 거쳐 대통령께 올라가는데 의아한 부분이 있으면 기안자인 제게 직접 전화로 물어보십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저에게만 그런 게 아니고 원래 성품이 그렇게 소탈하시더라고요.

 

언젠가 전주 방문 때는 대통령 숙소가 R호텔이었는데 밤에 비서실 직원들 몇이 밖에 나가 삼겹살에 소주 몇 잔 하고 들어갔더니 대통령께서 ‘어이, 나도 삼겹살 좋아하는 거 알면서 자네들끼리만 먹고 다닌다 이거지’ 하면서 웃으시더라고요. 정말 격식 따지는 거 좋아하지 않으시고 누구에게나 편안히 대해 주시던 분이었습니다.

 

제 개인적 에피소드라면 기억나는 게 있는데 대통령께서 해외 순방을 가게 되면 비서관들이 미리 답사를 다녀오기 때문에 제 경우엔 시애틀에 두 번, 하와이에 두 번, 과테말라에 두 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애틀만 해도 스타벅스커피 세계1호점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전부고 하와이에선 와이키키해변 모래사장에 발도 한번 들여놓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직책이 그렇게 바쁜 자리인줄 몰랐어요. 말만 해외 출장이지 맘 놓고 여행 한 번 할 시간도 없었으니까요.   

 

경기도교육청 정책비서관으로도 활동하셨지요? 
정치를 하면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교육 분야, 특히 혁신 교육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이재정 교육감의 비서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건 행운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그간의 국회와 청와대 근무 경험을 살려 여러 개선책을 내놓기도 했는데 지필 위주의 교원임용고사를 인성과 역량 기반형으로 혁신했고, 9시 등교 정책의 정착을 위한 노력, 그리고 학부모와 시민사회가 ‘마을교육공동체’란 이름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 등이 그것입니다. 학교가 지역으로, 지역이 학교로 다가가야 합니다.

 

학부모와 시민단체를 통해 마을교육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으며 생활정치가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다는 증거를 충분히 가지게 됨으로써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학교와 시민사회를 묶어내고, 학교와 교육으로 지역이 발전하며, 지역 인재들이 다시 지역을 살리는 선순환 체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평소 정계 진출 꿈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정치적 이상은 무엇입니까.
일찍이 지역에서 ‘청년이 중심이 되어 군산을 바꾸자’를 모토로 청년운동을 하던 중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근태 선배님의 권유로 1995년도 제도권 정치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이후 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 직능위원회 부위원장,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 시민 주권 운영위원 활동 등을 해왔고, 2012년에는 혁신과 통합 추진위원으로 참여하여 시민통합을 거쳐 민주통합당을 만드는데 노력해왔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소통의 정치입니다. 선거 때는 허리를 굽히다가도 일단 당선만 되면 얼굴 보기조차 힘든 그런 정치인이 아니라 언제나 지역민 가까이에서 안부를 주고받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정치인이 되는 게 제 꿈으로서 자본과 언론, 권력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는 발언, 서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펴보고 싶습니다.

출마 경험도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요.


4년 전, 17년 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떠나 지난 총선에서 패배가 명약관화한 무소속으로 출마할 때 이번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바 있습니다.선거법 위반으로 선거사무실을 압수수색당한 후보와 상대를 비방하는 흑색 유인물을 뿌리다 후보의 동생이 긴급 구속되었음에도 공심위는 그들을 경선 후보로 결정했습니다. 재심이 받아들여졌지만 최고위에서 다시 기각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탈당의 아픔은 너무도 컸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후 정권교체의 작은 밀알이라도 되고자 문재인 후보의 대선 선대위에 최선을 다해 참여했습니다. 패배의 원인을 되묻고 아픔을 곱씹으며 보다 튼튼한 당의 기초를 세우고, 일상에서 대안을 찾고 제시하는 생활정치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언젠가 다시 당에 돌아가게 된다면 기초부터 시작하겠다고 다짐했고, 진보교육감 시대를 열기 위해 지역 곳곳을 다니며 많은 교원과 학부모, 시민사회 분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그들을 돕는 역할을 하다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으로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서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팽배한데 그에 대한 생각은?
정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차이와 다름을 조정하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네 편, 내편으로 갈라 옳고 그름의 문제로 치환시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정쟁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큰 문제입니다.

 

이것은 정당 간, 또는 정당의 내부 문제이기도 하지만 최근만 보더라도 일부 언론과 수구 종편이 진보개혁세력을 이간질시키고 정치로부터 국민을 멀어지도록 기를 써가며 사회 전체 분위기를 분열시키고 있어 큰 걱정입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국내외적으로 존경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다른 나라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찾고 싶은데 초지일관의 신념을 가지고 있느냐 물으셨던 백범 김구 선생님,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고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제가 모시고 일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정치하면서 누구나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옳은 길을 가고자 하면서도 손해가 분명해 보이면 초심을 지킬 것인가, 쉬운 길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금전적 이익 같은 것이라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노선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은 일선 당선이 돼야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보장된다 생각하면 대부분 소신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갖 불리함 속에서도 소신을 지켰던 그 분들처럼 저도 그런 올곧은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정치인이 교육 분야에서 일하는 게 흔한 사례는 아닌데 경기도교육감 정책비서관으로 일하게 된 계기, 그리고 본인의 실적을 자평한다면?
이재정 교육감은 성공회대 총장과 참여정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셔서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분으로서, 직전 김상곤 교육감이 갑자기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바람에 경기도 사회단체로부터 출마를 권유받고 후보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거를 도와드리고자 수원으로 갔다가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사회 전체가 어수선한 상황이었는데 같이 일해보자는 교육감님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어 정책비서관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재직하면서 혁신 교육과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많은 공부도 되었고 성적보다는 성장을 돕는 교육, 경쟁보다는 협력과 배려를 배우는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9시 등교 정책, 교원 임용시험의 개선을 이끌어 낸 것은 보람으로 남고 있고, 62세 정년이 보장되는 교사 임용시험에 시험성적만이 절대 기준인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어 교육자로서의 소양과 철학 등을 심층적으로 평가해서 선발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에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기록한 자기성장보고서, 심층집단면접, 수업 실연 등을 도입하여 교사 선발의 불합리를 해결했던 일 역시 큰 자긍심으로 남고 있습니다.

 

감명 깊었던 책, 영화와 공연을 든다면? 
신영복 교수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은 제게 큰 감명을 준 책으로서 20년 세월을 사회와 격리되어 감옥에 계시면서도 어쩜 그리도 사람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깊은지 가슴을 울리는 저서입니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유명을 달리 하셨는데 타계하시기 직전에 경기도교육청에서 만나 뵈었을 때 제 이름 신영대를 직접 써주시면서 자신의 형 이름도 신영대라면서 미소 지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영화로는 멜 깁슨이 감독, 주연을 맡은 ‘브레이브 하트’를 들고 싶네요.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영웅 윌리엄 월레스를 그린 영화인데 마지막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영웅이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며 ‘For Freedom!’을 외쳤던 마지막 장면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듯합니다. 그리고 공연은 국민연극 ‘라이어’가 기억에 남는데 거짓말이 반복되어 상황이 꼬이다가 반전을 이루는 상황 설정이 재미있었고 대한민국 국민이 제일 많이 본 연극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끝으로 정계에 진출하신다면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지 말씀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간 중앙 무대의 국회의원 보좌관, 청와대 행정관, 교육감 비서관 경력을 거치면서도 저는 타지로 주소지를 옮긴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군산에서 교직에 있고 딸아이도 군여고 3학년 재학 중인데 서울과 경기도에서 근무할 때 직장 동료들의 공통된 질문은 아내가 공립학교 교사이고 딸도 고등학생인데 왜 이사 오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불편함이나 교육 여건의 열악함 때문에 말과 행동이 다른 공직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말로는 떠나지 않는 군산을 외치며 내 아이만 서울에서 교육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제가 나서 자란 군산은 설령 제가 중앙무대 정계에 진출한다 해도 영원히 함께 할 고향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어느 정치인보다 군산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인식이 깊고 애향심이 크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군산에 덕담 한 말씀 부탁합니다.


우리 군산에 이렇게 사람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잡지가 있다는 것에 큰 뿌듯함이 들고 발행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록이 쌓이면 매거진군산이 바로 군산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매거진군산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오래토록 군산 기록의 역할을 다 해주시기를 빕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올해는 뜻하는 일들 다 이루시고 군산 발전을 위해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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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1 17:54:23) rec(581) nrec(564)
신영대 예비후보님!!!! 궁물의당 정치인이 군산지역에 다시는 발을 못 붙이도록 저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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