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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문화원 이진원 원장에게 듣는 군산의 문화
글 : 조종안 (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5.06.01 13:11:2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이진원 군산문화원장 인터뷰

이인식 선생과 임병찬 의병장의 숨은 이야기 발굴 취재하고 싶어
[인터뷰] 군산문화원 이진원 원장에게 듣는 군산의 문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군산은 근대역사·문화만 있지 고대와 중세는 없는, 뿌리가 없는 지역이 아닌가 하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래 줄임)"

 

윗글은 작년 10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3층에서 개최된 '군산불교 보물전-천년의 만남' 개막식에서 성우 스님(금산사 주지)의 인사말 중 한 대목이다. 성우 스님 말마따나 토박이 중에도 '군산은 먹고 노는 문화밖에 없다'고 자조 섞인 탄식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정말 군산에는 먹고 노는 문화밖에 없는 것일까? 기자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군산의 문화는 유구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진원(78) 군산문화원장은 “군산은 농산물과 수산물이 풍부한 항구도시로 호남지방에서 개경으로 가는 세미를 보관 운반하는 조창과 조운이 발달하는 등 새로운 문물이 타 도시보다 일찍 유입되는 지리적, 환경적 조건을 갖춘 도시”라며 역사와 그 배경을 설명했다.

 

 

“군산은 중국 대륙을 바라보며 금강 초입에 자리한 도시로 지정학적으로 요지였지요. 선사시대부터 중국 내륙과 해안의 농어민이 기착하여 살았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중국, 일본 등을 연결하는 해상 교역·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기벌포 전투’와 ‘진포대첩’ 등 세계 전쟁사에 기록될 전쟁터가 되기도 했으나 평화 시에는 해양 물류유통 중심지였죠.”

 

군산 지역 문화의 변천

 

빵집 이성당을 비롯해 복성루, 중동호떡, 빈해원 등은 주말만 되면 손님이 나래비를 서고, 식당들도 북새통을 이룬다.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구릉지와 하천이 많았던 군산은 농수산물이 풍부해 일찍부터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굴과 조개를 까먹고 버린 패총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분포된 지역이고, 연근해에서 잡은 각종 생선과 채소가 특산품으로 선정돼 수라상에 올랐다는 조선 시대 기록이 추정을 가능케 한다.

 

백제 시대부터 사찰이 창건됐고, 조촌동, 신관동, 내흥동, 성산면 여방리, 나포면 장상리, 대야면 산월리, 옥산면 당북리, 서수면 관원리 등 10개가 넘는 마을에서 백제 고분이 발견되었다. 은제팔찌와 순금제 화판장식, 금동제 귀고리, 여섯 점의 환두대도와 말뼈 등도 출토되어 삼국시대 군산 지역 문화가 얼마나 융성했는지 그 척도를 짐작케 한다.

 

세곡을 보관하는 군산창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 태조 6년(1397) 군산진이 설치되어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로 중시됐던 군산은 개항(1899)과 더불어 조계지를 설치하고, 개항장을 관리하는 옥구 감리서를 두었다. 대한제국은 한 나라에 독점되지 않도록 각국 조계지로 정했으나, 경술국치 이후 일본에 종속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문화·예술은 면면히 이어지면서 발전을 거듭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고 1948년에 ‘군산국악원’이 설립된다. 그해 군산 문학협회가 발족한다. 전쟁의 포화가 가시지 않은 1952년 11월 ‘군산 아마추어사우회’, 1953년 2월 ‘토요동인회’가 결성된다. 회원들의 창작활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신석정, 이동주 등 전주, 익산 문인들도 가담, 전북 문학의 메카로 거듭난다.

 

시인 고은은 자전적 소설 <나의 山河 나의 삶>에서 토요동인회가 태동한 1951년을 “한말 최익현과 함께 거병하고, 전국 잔여 의병을 결집했던 의병지도자 임병찬의 한시와 그 뒤 채만식의 뛰어난 소설(<탁류>)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문학 활동이 없었던 터에 하나의 문예집단이 나타난 1951년은 토요동인회라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명예로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가장 감명 깊었던 책은 누님이 사다준 <난중일기>

 

1965년 10월 옥구문화원이 설립되고, 1986년 7월 군산문화원(초대 원장 이병훈)이 사단법인 인가를 받는다. 군산역사 기행, 용왕굿 재현, <문산 문화> 발간 등 전통문화 보존과 지역 특성 살리기에 주력하던 두 단체는 1995년 행정구역(군산시·옥구군) 통합으로 그해 1월 1일 군산문화원으로 새롭게 출발하여 오늘에 이른다. 아래는 2013년 8월 취임한 이진원 원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군산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 같다. 어렸을 때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
“나는 군산시 임피면 술산이 고향이다. 중학교 때부터 군산으로 기차통학을 했는데 걸어 다니는 날이 많아서 고생을 많이 했다. 공부도 엉망이었다. 우등상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받았다. 5촌 당숙이 평화동에 있던 쌍성루로 데리고 가더니 짜장면을 사주더라. 얼마나 맛있었는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평화동을 지나갈 때마다 그때 그 냄새와 맛이 떠오른다.(웃음)”

 

-학창시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나,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초등학교 때부터 먹고 사는데 매달리느라 공부도 ‘째(멋) 없이’ 했다. 딴 곳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는데 공부하고 책 읽을 시간이 있었겠나. (웃음) 참, 초등학교 때 교사였던 누님이 사다 줘서 성웅 이순신장군의 자서전 <난중일기>를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순신 장군의 기상과 애국심. 어린 마음에 하늘보다 높은 영웅으로 보였고, 대목 대목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이사와 부원장을 거쳐 2013년 8월 문화원장이 됐다. 군산문화원과 언제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

“교직에 있을 때는 군산문화원에 대의원이나 이사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정년퇴직을 얼마 남겨놓은 2000년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안을 잘 아는 이창열 교장, 김양규 교장 등이 나를 이사로 올려놓고 이런저런(한자 쓰기, 영어 강사 등) 일을 시키는데 모르는 척 할 수도 없고, 따분했다.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니 일에 애정도 생기고 시민과 선후배들 도움으로 원장까지 하게 됐다. ‘상선약수’ 정신을 가슴에 담고 한다고 하는데, 여러모로 부족함을 느낀다.”

 

첫 번째 취재 대상은 이인식 선생과 임병찬 의병장

 

이진원 원장은 2000년 군산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 했다. 그 후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노인들에게 영어와 한자 쓰기, 컴퓨터 교육을, 초등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어느 날 사회봉사를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2006년 ‘실버넷뉴스’(인터넷뉴스) 기자가 되어 문화원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노인 건강·복지 중심의 기사를 다뤘다.

 

 

-군산문화원의 설립 목적과 매년 개최하는 행사는?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발전·계승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설립됐다. ‘상선약수’ 정신으로 전통문화 계승발전과 시민의 생활문화 프로그램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연중행사는 정월 대보름 풍물 한마당, 중동 당산제, 최호 장군 추모제, 임병찬 의병장 충혼제, 오성 문화제전, 옥구 농민 항일항쟁 기념행사, 진포대첩 재현행사 등이 있다. 우리 고장 향토문화 역사탐방, 시민과 함께 떠나는 문화기행, 향토문화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인터넷신문 기자 경력이 있다. 가장 먼저 취재하고 싶은 상대는 누구인지? 
“애국지사 춘고 이인식 선생과 돈헌 임병찬 의병장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 취재하고 싶다. 이인식 선생은 임피면 출신으로 3·1독립만세운동 때 선봉에 섰다가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물려받은 논밭을 팔아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으로 거금을 헌납하고, 일본에서 한국인 학생 항일결사대 일원으로 거사를 도모하는 등 조국 광복을 위해 젊음을 바쳤다.

 

임병찬 장군은 옥구 출신으로 집권층의 부패와 외침으로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6세 때 지방시에 수석 합격하였고, 낙안 군수 겸 순천진 절제사로 있으면서 농정에 공을 세웠다. 을사늑약(1905)으로 국운이 기울자 의명을 일으켰고, 경술국치(1910) 후 독립의군부 전남 순무대장이 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1914년 외경에 체포되어 거문도에 유배되고 1916년 5월 단식을 감행하여 자결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두 분 동상이 월명공원과 근대역사박물관 앞에 세워져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유족들과 관심 있는 분들이 가끔 찾아뵙는 모양인데, 시민들의 관심이 없어 지쳐있는 상태다. 범시민적 차원으로 추모제도 지내고, 임병찬 장군 유골을 고향 선산으로 모셨으면 한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도리라고 생각해서다.”

 

 

-2015년 상반기에는 중동 당산제를 시작으로 정월 대보름 풍물한마당, 시민 문화교실, 최호 장군 제416주기 추모제, 글짓기대회, 향토문화역사 탐방 등을 주최했다. 하반기 계획은?
“하반기 사업 계획은 임병찬 선생과 의병 35인 충혼제, 시민과 함께 떠나는 문화기행, 오성 문화제전, 옥구 농민 항일항쟁 기념행사, <군산 문화>를 발간 등이다. 남은 임기 동안 군산의 전통문화를 발굴, 계승, 발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며,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군산문화원
주소: 전북 군산시 나운1동 796 열기전북 군산시 나운1동 796
도로명: 전북 군산시 대학로 330
전화: 063-451-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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