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호수와 제방둑
봄볕 따라 군산호수 제방둑을 올라서며
청암산!
이름만 들어도 맑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푸른산(군산의 보물 세 가지 중 하나인 청암산)을 찾은 것은 3월의 햇빛이 따사로운 아침나절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청암산은 청초롬한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일행들과 함께 주차장에 도착하여 먼저 관광안내도를 살펴보았다.
군산구불4길, 구슬뫼(玉山)길은 군산 호수를 품고 있는 길이 약 18.8km의 둘레길로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30분이 걸린다고 소개하고 있다. 숫자 방향인 1~9코스로 돌아보기로 했다. 7.18km, 약 2시간 소요라는 안내판을 보며 나의 불편 체력이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 언덕을 올라서니 탁 트인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전에 보았던 그 군산호수가 분명한데 새로 만난 듯, 가슴이 쿵하고 울림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찾아 온 일행을 잊지 않고 환영해 주는 듯 호수가 일렁였다.
군산호수는 과거 상수원보호구역으로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며 지금은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또한 이곳은 호수를 보호하는 것처럼 둘러친 방풍림과 원시림이 그대로 전개되어 있다. 일찍이 이곳을 수원지로 사용하지 않고 개방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존재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이 선물한 천혜의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는 군산호수.
숲과 물, 바람과 공기, 원시림이 전개된 자연을 볼 수 있는 자연생태 탐방로로 제격이며 이곳은 등산로와 주변 산책로가 있어서 등산과 도보여행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명소라 할 수 있었다.
청암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잔잔한 위엄을 느끼게 하는 봄날의 윤슬, 아! 그것은 달음박질 쳐서 빠져나온 젊은 날을 뒤로 하고 60대 중반에 바라보는 광경이어서 일까. 잔잔한 물결이 나를 반겨주고 있는 것이었다. 지나온 세월을 잠시 수원지에 내려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숲속으로 들어갔다.
댓골 대나무
청암산의 유래
군산시 회현면, 옥산면 일원에 길게 드러누운 청암산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뤄 등산과 산책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청암산은 조선시대 이전 푸른산이란 의미의 취암(翠岩)산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 청암(靑岩)산으로 명칭이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취암산을 빠르게 발음하다 샘산으로 들리면서 샘산으로도 불렸다.
수원지 자리는 원래 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논 가운데 큰길이 있었으며 이 길은 조선시대 만경강 포구였던 회현 월하산에서 금강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던 청암산은 인근 금성산과 이어지며 현 회현초등학교 뒷부분까지 토성이 축조돼 만경강을 통해 침투하는 외부세력에 대비했다. 일대에는 장다리, 팔풍갱이, 세동, 요동, 고사동 등 5개 마을이 있었으며 장다리 마을은 조선시대 회미현 장재면에서 유래됐고, 팔풍갱이 마을에는 주막, 민박집 등이 있고 놀이꾼들이 거주했다고 전해지며 이름의 유래를 짐작케 한다.
세동 마을은 현재 세장리로 흔적이 남아 있고, 전투에서 전사한 혼을 달래기 위한 고사(古寺)란 사찰이 있었다 하여 이름 지어진 고사동 마을은 현재 고사리가 됐다.
전쟁 중이던 장군이 청암산에서 맞은편 산으로 뛰어내리다 말이 죽자 그곳을 말바위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설로 내려온다.
구불구불 인생길 닮은 구슬뫼길
호수 둘레길을 따라 가다 보니 봄까치꽃, 광대나물의 풀꽃들이 반겨주었다. 숲에는 숲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스한 햇살이 숲 사이로 간간이 쏟아지고 풀내음이 잠자던 감성을 깨우고 들여 마신 향기는 몸 안의 나쁜 기운을 내보내 주는 것 같았다.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 분위기를 연출하는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청암산 일대는 1939년 수원지로 조성되었으며, 1963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2008년 지정해제 될 때까지 45년 동안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되어왔다. 상수원은 현재 군산호수공원이라 불리며 그 면적은 2.34㎢에 달한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습지 생태계의 보존과 각종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 졌다. 이곳을 찾는 탐방객을 위하여 군산시니어클럽탐방플러스 회원들이 쉬지 않고 길 안내를 자세히 해 주었다.
유유자적 호수 위를 노니는 철새들
호수에는 청둥오리가 삼삼오오 노닐고 있었다. 드리워진 상록수의 반영 위로 잔잔한 호수에 작은 파도를 일으킨다. 유유히 짝지어 헤엄치던 오리 떼를 따라 가다 보니 우아한 자태의 백조 한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니, 웬 백조일까, 왜 혼자일까, 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상상을 하는 사이, 애처로움도 잠시, 그늘에서 벗어난 백조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백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군산호수는 물이 맑아 청정지역에서만 서식한다는 각종 담수어들이 살고 있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작은 돌들 사이로 미생물들이 무수히 움직이고 있다. 유년시절 냇가에서 놀던 맑은 물이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니 참으로 가슴 뭉클하게 아름다운 감동이 일었다.
댓골 대나무
대나무가 많아서 댓골마을
송죽지절(松竹之節)!!
‘대나무같이 꿋꿋하고 소나무 같은 절개’라는 한자어가 생각났다. 둘레길 30분쯤 걸었을까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이곳은 옛날 대나무가 많아서 죽동마을 즉 댓골이라 불렀다.
마을에는 1930~1940년대 만경강 하구 마을에서 옥서, 하제 사람들이 대나무를 사기 위하여 댓골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고기 잡을 때 사용하는 통발을 만드는 데 사용할 대나무를 사서 달구지에 싣고 진흙길을 덜그덕 거리며 지나갔다고 한다.
그 당시 농사지은 벼 수확보다 대나무를 재배한 소득이 5~6배 더 나았다고 하니 대나무 단지가 넓게 조성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대나무 숲 옆에는 유난히 쭉 뻗은 키 큰 소나무가 많았다. 토종 소나무로 조상들은 해솔(곰솔)이라 불리는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
바로 애국가 가사에 나오는 소나무 같은 기상, 또는 사철 푸른 소나무라 하여 우리 선조들의 절개를 상징하던 나무였다. 우리나라 국토 산하 어디에서든 볼 수 있던, 허리 한 번 굽지 않고 하늘을 향해 쭉 뻗은 해솔을 두고 한 말이었다. 청암산 산행하면서 가장 멋진 둘레길 코스였다. 청암산 죽향길에 있는 하트모양의 포토존이 너무 멋져 사진 한 컷 남겼다.
물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 왕버드나무 군락지
거꾸로 삽목을 해도 살아난다는 왕버드나무 군락지에 도착했다. 물속에서도 깊이 뿌리내려 수면 위의 커다란 몸집을 지탱 할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왕버드나무 군락지였다. 구부러진 나무 가지위로 호수와 멀리 야트막한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봄이 되면 왕버드나무는 솜털처럼 씨털을 날리는데 이 씨털은 아스피린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물속에 깊숙이 박힌 뿌리는 물을 정화시켜 각종 미생물들의 서식지를 만들어 준다니 뿌리에서 씨앗까지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소중한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수지 가장자리에서 반쯤 뿌리가 뽑힌 채 구부러진 가지에 새 싹을 틔우는 버드나무를 보니 한 겨울 벌거벗은 몸으로 물속에서 추위와 싸워 냈을 나무들을 토닥토닥 안아 주며 속삭였다. 참 대단하다고···.
그들은 혼자보다는 군락을 택했다.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긴 뿌리를 뻗어 나가며 서로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뿌리 모습을 보며 왕벚나무의 생명력과 자연의 섭리에 새삼 고개가 숙여졌다.
아름드리 버드나무에서 이맘때면 느껴지는 보릿고개 세월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저수지 물을 담수하여 지은 쌀농사를 식솔들 입에 허기도 채우지 못한 채 일본으로 실려 갔던 시절이 있었으니. 쌀가마니가 산을 이루었던 수탈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왕버드나무의 속내도 까맣게 타들어 갔으리라.
군산노인일자리 시니어탐방플러스 회원들을 만나다.
주변 동네 이장을 역임한 마을 해설사이며 자원봉사자이신 군산시니어클럽 탐방플러스 회원이 호수길을 따라 걸으며 호수에 얽힌 사연들을 하나씩 풀어주신다. 구수한 입담으로 호수에 잠긴 마을 사연들을 듣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마을이 호수에 잠기기 전, 동네 처녀 총각이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 했으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치자 처자가 물속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에 솔깃하게 귀가 열렸다. 이야기의 끝은 그 주인공의 총각은 현재 이 마을에서 손주까지 보며 잘 살고 있다니··· .
군산시니어클럽 탐방플러스 회원들은 청암산 사랑이 남달랐다. 자연과 친해지기 위한 자료를 서로 공유하며 쓰레기를 줍고 주변 청결을 책임지고 계셨다. 또한 관광객들의 안내와 사진 촬영을 돕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다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봉사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청암산 정상에서 바라 본 만경강
호수에 얽힌 시니어클럽 봉사자의 얘기를 들으며 구불구불 나무 사이를 헤치고 가다보니 대나무 숲길이 끝났다. 이어서 굴참나무, 갈참나무, 화살나무 사이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등산로 방향으로 구불 5길 방향으로 갔다. 청암산 정상으로 가는 첫 번째 갈림길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르다 보면 첫 번째 촬영하기 좋은 장소가 나온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놓인 벤치가 한 박자 쉬어 가라는 듯 반가웠다.
몇 발작 더 올라가면 완만한 코스는 끝이 나고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갈 수 있는 코스를 지나 청암산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119m의 정상에 도착하니 정자가 놓여 져 있다. 정자에 몸을 던지고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가다듬으며 크게 복식 호흡을 해 보았다. 겨울 동안 게을러진 몸이 놀란 듯 요동친다. 탁 트인 시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져 들면서, 올라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올라오는 구불길이 우리네 인생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다고 올라가기를 멈췄다면 볼 수 없었을 정상. 아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더는 힘들어 포기하고 되돌아갔다면 맛볼 수 없는 성취감 같은 것이 살아오면서 죽을힘을 다해 살아낸 우리네 인생 이야기 같았다.
청암산(샘산)은 척동마을을 지나 걷다 보면 정상으로 길과 중턱으로 우회하여 가는 길이 있는데 정상에 오르면 아름다운 군산호수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으며 멀리 남쪽으로는 만경강을, 북쪽으로는 금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청암산을 내려오는 등산로와 수변산책로가 있는데 수변산책로는 다양한 풍경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길이였다.
군산의 보물 청암산 둘레길을 마치며
군산 청암산(군산호수) 산행과 둘레길에서 만났던 동행인들, 리기다소나무, 철쭉, 화살나무, 벚꽃, 대나무, 왕버드나무들과 함께 하여 지루할 새 없는 마음의 길, 구불길이 끝이 났다.
청암산은 호수를 품고 호수는 군산시민을 품어주는 아름다운 산행을 마치며 군산호수가 언제까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쳐지지 않고 우리 곁에 영원한 ‘군산시민의 보물’로 남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들이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