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종구의 독서칼럼: 책과 사람 그리고 세상 이야기
김도희. <정상동물>. (은행나무, 2023)
<정상동물>은 동물정치를 실천하는 동물권 변호사로서 ‘어쩌다 두 고양이 ‘보리’와 ‘나무’와 동거’하고 있는 김도희가 2022년 ‘수유너머’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출판한 책이다. 현재 한국의 반려동물 인구는 1500만 명을 상회한다고 한다. 더불어 반려동물 산업 시장 규모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펫코노미(Pet+Economy)라는 신조어야말로 그러한 추세나 추이를 극명하게 압축하는 용어이다. 1500만 명을 상회할 정도로 많은 반려동물 인구의 대열에 나는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동물권이나 동물복지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조금씩 조금씩 관심을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기존의 통념이나 관행을 해체하거나 심문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어떨 때는 그러한 해체나 심문 행위를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김도희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해체의 대상으로 심문에 부치는 기존의 통념이나 관행은 ‘인간 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 그리고 ‘정상동물 이데올로기’이다. 흔히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지구상의 최고 주인 행세를 하면서 인간 중심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데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그러한 사유와 실천은 단연히 우리들의 종 차별적 언어 습관이나 관행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게 비인간 동물(인격체)들을 대상화하거나 타자화하는 욕설이다. 그 욕설 가운데 아마도 대표적인 게 ‘개만도 못한 인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욕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접근하면 그보다 더 심한 모욕이 없을 정도로 모욕적인 발화이다. 하지만 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욕설은 ‘인간 중심주의’의 언어적 폭력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동물의 입장에서 인간들의 위선이나 허영, 모순이나 비리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금수회의록(안국선, 1908) 같은 우의소설이 등장했던 것을 보더라도 그러한 생각은 나만의 엉뚱한 발상만은 아닐 듯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신선한 자극을 받았던 게, 그로 인해 동물들에 대한 기존의 나의 통념들을 반성적으로 반추하게 했던 건, 동물들의 개체수를 셀 때 사용하는 단위나 동물들과 관련된 기존의 고착화된 명칭이나 지칭들을 낯설게 고쳐 부르는 명명이었다. 구체적으로 ‘마리’를 ‘명’(이름名이 아니라 목숨命), ‘물고기’를 ‘물살이’(고기는 식용 가능한 각종 짐승의 살로 보통은 소고기, 돼지고기처럼 죽은 짐승의 살을 말한다. 따라서 살아 있는 상태로 물에 서식하는 생명체로서의 어류라는 뜻에서의 물살이), ‘수컷’을 ‘남성’ 등과 같이 부르는 말이다.
공자의 <논어> 정언 편에서 제자가 “정치의 요체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정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로 잘 알려진 미국의 여성운동가 리베카 솔닛은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이다......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숨겨져 있던 잔혹함이나 부패를 세상에 드러낸다. 혹은 어떤 중요성이나 가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야기를 바꾸는 일, 이름을 바꾸는 일, 새 이름이나 용어나 표현을 지어내고 퍼뜨리는 일은 세상을 바꾸려 할 때 핵심적인 작업이다. 해방을 추구하는 운동들에서도 새 용어를 만들거나 알려지지 않은 용어를 널리 알리는 작업은 늘 중요했다.’(리베카 솔닛/김명남 옮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창비, 2018, 9면),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를 구성하며” “이름을 바꾸는 일, 새 이름이나 용어나 표현을 지어내고 퍼뜨리는 일은 세상을 바꾸려 할 때 핵심적인 작업이다.(<세대>, 민음사, 2020, 30면.)라는 주장을 통해 어떤 대상에 대한 이름이 얼마나 중요하고 긴요한가를 역설하고 있다.
최근 “제주에서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여 법인격을 부여하고,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124면) 지구공동체에 거주하는 모든 인간⸱비인간 생명체들이 동등한 법인격을 가지고서 서로 사이좋은 이웃으로 사이좋게 지내는 ‘동물정치공동체’의 구상이 현재 그 정점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지구의 생태위기와 기후위기의 현실적인 대안이나 해법이 될지 아니면 단순히 몽상가들의 이상으로만 그치고 말지, 지금 시점에서 섣불리 예단하거나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비인간 생명체들 또한 지구촌의 정다운 이웃 주민들이라는 동물권 활동가들의 주장이나 호소가 더욱 확산되어 공유의 지평을 넓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1500만 명을 상회하는 반려동물 인구들이 같이 살고 있는 반려동물들에게만 지극정성과 사랑을 집중하지 말고 이 지구상에 공존하는 모든 인간⸱비인간 존재들에게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동물해방물결’에 의해 도축 직전에 있던 축사에서 구조된 후 자연사할 권리를 갖게 된 6명의 홀스타인 종 남성 꽃풀소들의,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라고 온몸으로 외치는”(298-300면) 절규에 우리 모두 조금이나마 응답하려는 관심을 보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과 함께 이 글을 매조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