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구향교와 광월산
봄볕이 따스한 날, 옥구읍성이 있던 상평을 향해 길을 나섭니다. 백석산(발이산, 돛대산) 자락에서 이어져 온 산 흐름이 편자처럼 남쪽을 향해 구부러진 나지막한 광월산(75m)을 따라 석성으로 성을 쌓고 읍성을 이룬 옥구현이 있던 자리입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 지역문화재 탐방차 보리밭 푸르르던 봄날 찾아왔던 오래 전의 봄날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향교 대문에 붙어 있는 입춘대길과 건양다경이란 입춘방처럼 화사한 봄볕이 가득한 광월산 능선과 향교 서원의 풍경이 옛 정취를 더해주었습니다. 세월의 경계처럼 아득하게 구부러진 성터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눈 앞에 옛 풍경을 펼쳐놓았습니다.
저 멀리 동문 쪽에서 한림동을 지나온 유생이 향교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며, 광월산 자락에 있던 광월루의 우뚝 선 풍채가 훤훤장부의 늠름한 모습을 닮은 것 같습니다. 남문 부근 읍장시에 장꾼들의 모습도 보이구요, 환곡을 얻으러온 흰옷 입은 백성들의 핍진한 걸음도 다가옵니다. 사령들과 통인들, 관노와 아전들이 부산하게 오가던 거리, 저 멀리 사또가 머무는 내아와 동헌, 객사를 비롯해 군기고와 향청등 관아의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귀를 기울여보니 관아에서 매맞는 죄인의 비명소리와 향교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 장꾼들의 흥정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최치원의 전설이 전해지는 자천대
매번 옥구읍성이 있던 상평에 오면 이 지역의 정취를 대표하는 옥구팔경의 풍경이 눈에 선하게 다가옵니다. 이맘때 쯤 너른 너른 뜰 위로 내리던 옥산의 봄비며, 향교 뒷편 광월루에 올라 성 안에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내려다 보던 그 평온한 읍성의 고즈넉함, 멀리 은적사에서 치는 저녁 종소리나 금모랫빛 모래밭에 내려앉던 기러기떼들, 오봉산에서 바라보던 만경강의 햇볕 가득하던 물결과 쇠개(牛浦)로 들어오던 돛단배의 그림 같은 정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새봄, 양지바른 광월산 자락을 따라 향교와 서원, 동문지와 서문지를 따라 오백 년도 넘은 느티나무의 숨결을 따라 찬찬히 역사 속 작은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어린 아들과 함께 오래 전 떠나왔던 자천대에서의 사진처럼 세월 속에서 추억어린 우리 삶의 여정을 돌아보는 일이 될테니까요. 쇠막대기가 닳도록 글씨를 연습했다던 최치원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자천대의 옛 이야기를 따라서 말이지요. 근대역사를 넘어 더 아득한 시간 여행이 아지랑이 너머에 펼쳐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