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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영화감독 김대현
글 : 이진우 /
2020.06.01 16:29:5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군산의 영화감독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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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로봇군산이라는 페이크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군산에 거주하고 있는 김대현 영화감독을 만나서 그간 그의 작품과 현재 진행 중인 작품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1993년 지하생활자의 연출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데뷔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의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해주기 바란다.

 

1990년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과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완성한 서울길16mm 필름으로 만든 첫 번째 단편영화입니다. 김성수, 유하 감독 등이 대학원 선배들이었는데 같이 작업을 했고, 김성수감독이 당시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여서 선배 따라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에 연출부 막내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영화제작소 현실, 인디라인 등의 독립영화집단을 만들어 단편영화 제작 및 배급 관련된 활동을 활발하게 했습니다. ‘지하생활자에 이어 나마스테 서울, ’안개등의 작품을 만들었고, 단편영화가 전혀 배급이 안 되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아마도 한국 최초로) 독립, 단편영화 배급을 했었지요. OCN의 전신인 DCN과 캐치온 등에 단편영화를 판매하기도 했고, 1995년에는 이런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서울국제독립영화제라는 최초의 국제영화제를 기획하고 1998년까지 개최했습니다. 이 때 개막작품으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이란영화를 국내 최초로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제작에 국한하지 않고 독립영화 배급, 독립영화제 개최 등 영화와 관련된 비교적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했습니다.

 

-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번갈아 가며 제작을 해온 것으로 안다. 장르의 차이가 있다면? 그리고 어떤 장르가 더 매력 있는가?

 

최근에 한국번안가요사’, ‘다방의 푸른꿈’, ‘시간의 종말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속으로 만들면서 다큐멘터리감독으로만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극영화 한편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1억짜리든 100억짜리든 똑같이 힘들죠. 시나리오를 준비해야하고 캐스팅에 성공해야 하며 물론 투자도 받아야 하니까요. 크랭크인 날짜를 감독이 정할 수 없습니다만 다큐멘터리는 조금 다릅니다. 감독 개인의 노력에 의해 어느 지점까지는 진도를 나갈 수 있으니까요. 극영화 쪽에서 이런 지난한 과정을 이겨내야 하는 부담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상대적으로덜하다는 점이 주로 다큐 작업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역사나 음악 등 최근의 관심사들이 다큐로 다루기에 더 적합하다는 점입니다. 각각의 소재와 주제에 더 잘 맞는 옷이 필요한데 현재 나에게는 다큐멘터리가 몸에 잘 맞는 옷이라고 생각합니다.

 

- 2015년에 제작한 다방의 푸른꿈은 대한민국 최초의 걸 그룹을 다룬 작품으로 알고 있다. 미국 현지까지 찾아가서 인터뷰한 내용들과 과거 구하기 힘든 자료들을 집대성했는데, 어떤 계기로 만들어 진 것인가? 그리고 제작 당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는지?

 

다방의 푸른꿈은 상당히 오래 준비한 작품입니다. ‘한국번안가요사’(2012)라는 다큐멘터리가 1960년대,70년대 한국번안가요의 역사를 좇아서 리시스터즈’, ‘정시스터즈등을 찾아가는 이야기였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이들 모든 시스터즈의 원조가 김시스터즈였음을 알게 됐지요. 또한 그녀들의 어머니가 이난영이고 아버지가 김해송이라서 이들의 이야기는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숙자, 애자, 민자 세 분 중 애자씨는 돌아가셨고 숙자씨는 미국에 계셨는데,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헝가리에 살고 계시던 민자씨를 선택했습니다. 남편인 토미빅이 헝가리 출신 미국인 뮤지션이었는데 남편의 고향으로 이주했고 부다페스트의 재즈클럽 등에서 지속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던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죠. 1952년 한국전쟁 중에 미군의 클럽에서 데뷔한 김시스터즈1959년에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갔고 1960년대에 미국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습니다.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 100불도 안된 당시에 김시스터즈는 주급으로만 일만 오천 불을 받았으니까요. 당시 라스베이거스 고액 납세자 탑5에 들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한국 걸 그룹의 원조였고 최초의 한류스타였죠. 역설적으로, 이들이 미국에서 활동했기에 이 다큐가 제작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는 사실 과거의 영상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음악 다큐를 비롯해서 과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에드 설리번쇼에 스무 번도 넘게 출연하는 등 미국에서의 이들의 활약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남아 있기에 제작이 가능했습니다.

 


 

 

- 서천과 함께 하던 금강역사영화제가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숨겨진 솔직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군산에 오게 된 계기가 금강역사영화제입니다. 2016년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이 세월호 관련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말라는 압력을 행사했고 이에 반발해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보이콧 했었지요. 영화인들 몇몇이 모여 대안적인 영화제를 논의했고 2017년 여름에 8.15서울역사영화제를 개최했습니다. 이후 군산시의 제안으로 역사영화제를 군산에서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서천과 공동 개최를 하면 어떻겠냐는 추가 제안이 있어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도저히 일반적인 규모의 영화제를 개최하기에 역부족인 적은 예산이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순항했으나 20195월에 개최된 제2회 영화제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광주항쟁에 대한 가짜뉴스를 다룬 김군이라는 다큐멘터리 작품을 서천 측에서 상영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해온 것이죠. 영화제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었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반문화적 폭거였습니다. 이후 서천 측에서는 일체의 사과 및 재발 방지에 대한 입장 피력이 없었고 영화제 집행위원회에서는 서천과의 공동 개최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가장 마지막 작품인 내 신발에게는 세월호를 다룬 작품으로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 있다면? 그 어떤 정치적인 발언도 좋다.

 

내 신발에게는 단편영화입니다. 세월호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버겁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건에 대한 무수한 사연 중에 유독 김동혁 군의 신발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요. 수학여행 갈 때 신으라고 엄마가 사 준 새 신발을 신발장에 고이 모셔 두고 갔다가 어머니가 한참 뒤에야 신발장에서 그 신발을 발견합니다. 이 이야기를 3년이나 가슴 속에 담아 두고 있다가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김동희씨를 만나면서 위령제를 지내듯 대사 없는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문제는, 그저 기억하고 추모만 할 수 없는 현실에 있습니다. 아직도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소상하게 규명되기를 바랍니다.

 

- 현재 군산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왜 군산이라는 지역을 선택한 것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내려온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군산을 비롯해서 이 지역을 자주 다녔고 익숙했습니다. 영화제가 계기가 됐지만 재미가 없는 곳이라면 굳이 영화제작 사무실을 비롯해서 활동 기반을 전적으로 옮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군산이 가진 여러 이야기들이 충분히 매력이 있기 때문에 자리를 아예 잡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고 준비하게 됐습니다.

 

- 얼마 전에 로봇군산이라는 작품의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고 있다. 후반작업에 들어갈 텐데, 개봉은 언제쯤 어떤 형태로 하는 것인가? 또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처음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로봇군산이라는 작품은 “1930년대에 군산에 로봇이 있었다.”는 가공의 설정에서 시작하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입니다. 군산중학교 학생이 1929년 경성에서 열린 조선박람회에 전시된 일본 로봇 학천칙을 보고 영감을 받아 5년 뒤에 군산에서 로봇 산이를 만들게 된다는... 마치 포레스트 검프처럼 산이와 함께 각종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는 이야기입니다.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는 작품은 아니고 군산의 역사이야기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요. 군산에 대한 관심을 가진 관객, 여행객들이 군산에 와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라고, ‘산이라는 로봇이 초원사진관처럼 좀 더 군산이야기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군산 역사를 재미있게 알리는 캐릭터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더 기쁘겠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시리즈 형태로 군산의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지속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또 군산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동국사 컬렉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올해 안에 완성하고자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동국사 주지 종걸스님동국사를 지원하는 일본 조동종의 이치노헤스님의 이야기이며 이들 두 분 사이의 매개가 되는 일제 강점기의 군산 역사이야기가 함께 담길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군산을 키워드로 만들고 싶은 작품을 더 제작하고 싶습니다. 당장 눈앞의 관광 수익을 염두에 두기 보다는 군산의 풍부한 이야기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랍니다. 궁극적으로 이런 관심은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군산에 오게 하고 오래 머물며 군산을 제대로 즐기게 하는 방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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