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이야기> 이현웅
슬픈 카페 (The Sad Cafe)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깬 나는 귀향의 계획을 보류했다. 그 카페에 다시 가고 싶어서였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다. 카페 운영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굳이 그곳이 아니어도 될 일이었다. 후배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계속 투덜거렸다.
카페는 전날과 다름없어 보였는데 의외의 변화가 하나 있었다. 우리를 맞이하는 주인의 태도였다.
"어제 오셨던 분들... 맞죠?"
주문을 받으며 우리에게 알은체를 했다. 후배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웃었다. 주문한 술을 가져온 주인에게 합석을 제안했고 그는 승낙했다.
"카페는 하실만한가요?"
"아뇨. 쉽지 않아요."
초저녁부터 시작된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자연히 카페를 차리고 싶은 내 생각도 말하게 되었다. 술기운 탓인지 카페 주인은 많은 얘기를 들려줬다.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였어요. 공통점이 많았어요. 특히 팝송 좋아하는 건 더 그랬죠. 맛있는 거 사 먹고 옷 사 입는 것보다 레코드를 사는 게 먼저였어요. LP 산 날에는 그거 들으면서 음악 얘기하느라 밤새우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때쯤 되니까 나이 60이 되면 음악 카페를 차리자고 목표를 세웠고 실제로 딱 60 되던 해에 이 카페를 차렸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죠."
"다른 사람들도 그랬어요. 좋아하는 음악 매일 들으면서 일하니까 좋겠다면서 부러워했죠."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듯 카페 경영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부터 삐거덕거렸다. 미처 예상치 못한 일들에 부딪쳐야 했다. 오래 모아 놓은 돈을 거의 쏟아 붓고 나서야 개업을 할 수 있었다. 장사를 시작했으니 수입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 기대가 실망과 두려움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님이 너무 없었다. 이따금씩 찾아주는 지인들과 지나가다 들른 뜨내기손님으로는 카페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카페 앞 거리에서 쿠폰과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비롯한 여러 광고 방법을 동원했지만 효과는 보이지 않았다.
개업 일 년쯤 되었을 때 두 사람은 몹시 지쳐 있었다. 카페를 계속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대출을 받아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날이 이어졌다.
다행히 일 년 반쯤 되면서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한 달에 몇 번씩 찾는 단골도 제법 생겼고 입소문을 통해 찾는 손님들도 하나 둘 늘어났다. 그동안의 적자를 조금씩 만회하기 시작했다. 카페를 개업한 이래로 가장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그저 먹고 살 정도만 벌면 만족할 두 사람이었지만 그마저 녹록지 않았다. 2년 동안 열심히 홍보하면 그때부터는 손님이 손님을 데리고 와 저절로 굴러가는 구조가 된다던 어느 마케터의 책 내용과 현실은 달랐다.
두 사람은 지쳤다. 단골들이 하나둘씩 발길을 끊었다. 손님 수가 줄어들면서 두 사람은 의기소침했고 어쩌다 온 손님들도 썰렁한 분위기 때문에 도로 나가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평소 몸이 허약하던 아내는 건강이 나빠졌고 우울증이 왔다. 직원을 채용할 여유가 없어 카페 주인 혼자 운영하게 되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혼자 하다 보니 서비스의 질과 양은 떨어지고 피로에 지친 주인의 모습은 카페 분위기를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막막한 미래가 두렵지만 그보다는 카페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게 급선무가 되어버렸다.
"카페를 내놓은 지 꽤 됐는데 그마저도 뜻대로 안 되네요."
독한 칵테일을 마시며 말하는 카페 주인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카페의 처지를 묘사라도 하듯
이글스(Eagles) 밴드가 아닌 제이 디 사우더(J. D. Souther)의 목소리가 더 감성적으로 느껴졌다. 노랫말처럼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침묵했다. 무어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침묵을 깨뜨린 것은 카페 주인이었다.
"카페, 왜 하시려고요?"
기습과도 같은 질문에 당혹해하는데 그가 또 물었다.
"음악 좋아하시죠?"
"아, 네.... 뭐, 조금..."
"근데, 좋아하는 것과 경영은 본질적으로 다르더군요. 잘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커피 좋아하고 커피에 대해 잘 안다는 이유로 카페 차렸다가 실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죠. 인테리어를 예쁘게 하고 커피 맛이 좋고 서비스를 잘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겁니다. 그런 기본적인 것들이 아니라 내가 왜 카페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제게는 없었어요. 분명한 모토가 없는 사업은 즐겁게 일하지도 못하고 성공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카페를 그만둘 때 알게 됐네요. 허허"
자조와 회한에 헛웃음까지 섞인 말이었다. 그날의 대화중에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그 마지막 말이었다. 그날 밤에도 나는 잠을 쉬이 이루지 못했다. 카페를 왜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신은 여전히 카페 차릴 꿈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커피를 사랑하고 커피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그래서 독특한 인테리어와 획기적인 마케팅으로 커피 마니아들을 단골로 만들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푼 당신에게 묻고 싶다.
"카페, 왜 하시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