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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을 보고 나서
글 : 김정인 /
2019.05.01 15:29:0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세월호의 아픔을 잔잔하고 깊게 담아냈지만,

왜? 라는 질문을 던져 주지 못한 아쉬움

영화 ‘생일’을 보고 나서 





 

봄꽃 향기가 온 세상을 매료하는 4월, 그러나 끝내 꽃으로 피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독한 상처로 남은 4월, 그동안 보는 일이 겁나 주저하고 미뤄왔던 영화 ‘생일’을 만나러 갔다. 막차를 타듯 4월의 마지막 날 찾은 극장가에는 개봉이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700만 관객을 돌파한  ‘어벤져스-엔드게임’이 상영 시간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생일’은 한 달 반 만에 외곽으로 밀려나 마지막 상영만을 앞두고 있는 현실이었다. 비상업적인 영화가 180만 관객의 발걸음을 영화관으로 이끌어 냈다는 사실이 기대감을 갖게 했다. 

 

마침내 마주한 영화 ‘생일’은 생각보다 절제된 구성과 전개를 통해 담담하게 깊은 슬픔을 표현하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평소 예고편을 보지 않는 나는 적어도 한 장면쯤에서는 5년 전 사고를 재연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쉬운 추측을 했었지만 예상을 뒤엎고 영화의 어디에도 배나 파도는 보이지 않았다.

 

참 다행이었다. 수도 없이 봐 왔던 그 가슴 아린 장면을 굳이 돈을 내고 영화관에서 다시 보아야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직접적인 표현 보다는 우회적으로 표현해 낸 방식이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생일’이 ‘세월호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한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엄마가 수학여행을 떠난 아들과 나누는 마지막 핸드폰 속의 카톡 대화였다. 배 안에서 하늘을 찍어 사진을 전송한 아들은 “왜 전화 안 받아~~” 라는 애교 섞인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나라로 떠나버렸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생일’에서의 해후, 비로소 놓아주기  

 

영화는 크게 두 번의 진한 감동을 선사하며 관객에게 슬픔의 말을 건네 온다.

 

그 중 하나가 엄마 역을 맡은 전도연이 아들 옷을 부여잡고 오열을 하는 장면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 날 그녀의 모든 것이 정지해 버린 엄마, 실성하지 않고는 살아내기 힘든 존재가 되어버린 엄마, 그녀가 아들을 위해 점퍼를 사왔지만 아들은 곁에 없고 문득 그것이 그녀의 상상에서 오는 바람이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그녀는 손에 쥔 아들 옷을 부여잡고 한없는 울부짖음을 토해낸다. 

 

설움에 겨운 그녀의 울음소리는 아파트 단지를 넘어 급기야 온 동네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 순간 나도 그녀의 울음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지만, 그녀는 옆집 친구가 건네 준 안정제를 먹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다. 전도연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가늠하기 힘든 그녀의 울음 연기는 관객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가 심연의 눈물샘을 터트리고야 만다. 객석이 온통 울음바다가 되고 관객조차 영화인지 현실인지 모를 오묘한 오버랩을 형성한다.

 

두 번째가 바로 아들의 ‘생일’을 챙겨주는 장면이다. 

 

엄마에게는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준 다정하고 든든한 아들, 아빠에게는 많은 시간 함께 해 주지 못해 미안한 아들, 친구에게는 세월호사고 당시 구명조끼를 내어 주며 생명을 내어 준 은인, 단짝에게는 함께 자라 온 모든 기억을 공유한 또 하나의 가족으로 남아 있는 주인공 수호에 대한 아픔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모여 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비로소 수호를 마음 안에서 놓아주고 떠나보내게 되는 가장 핵심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이다. 여기서 나는 체면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 없이 펑펑 울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런데 이 장면은 진실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감동의 장면인 동시에 아쉬운 부분이기도 해서 아이러닉하다. 세월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여러 유형의 아픔을 이야기 하다 보니, 영화 전체의 밋밋했던 구성과 전개가 마치 이 장면을 위한 이유였던 것 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결국 제목만큼이나 ‘생일’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나, 영화로서 갖는 크고 작은 흥미유발 요소나 구성이 부족한 채 마지막 장면으로 집중되는 영화의 언밸런스함은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왜! 라는 질문을 던져주지 못한 아쉬움

 

영화는 세월호가족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치유에 대한 서사를 담아내며 우리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는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공감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다. 나의 개인적인 바람은, 구조할 수 있었던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계속된 지시로 304명의 희생자를 바다로 내몰았던 우리나라의 구조 시스템과 행정의 오류 그리고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한 질문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희생자들조차 사고가 사망으로 이어질 현실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그 때, 왜 우리는 그들을 속수무책으로 배에서 끌어내지 못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나 예술작품이 가진 묘미는 예술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가 대중에게 더욱 깊게 파고들어 작품을 빛내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생일’은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모호한 경계에서 소재만으로 영화를 풀어내는 밋밋한 구성과 전개를 보여주었고, 소재 자체가 흥미를 유발하기는 어려웠지만 영화라는 장르가 갖는 다양하고 박진감 넘치는 요소들은 다소 부족해 보였다. 

 


 

 

 

 

끝나지 않은 이별, 그러나 끝내야 하는 아픔

 

영화 ‘생일’이 진정,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이렇게 찾아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 ‘수호의 죽음’으로 고통 받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겪는 아픔은 곧 나의 아픔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남’인 동시에 ‘우리’이고 ‘우리’인 동시에 ‘나’이기도 하다. 마치 ‘수호’를 중심에 두고 펼쳐지는 끝없는 마인드맵처럼 세월호가족이 겪는 아픔은 곧 그들과 관계맺음을 하고 있는 우리 이웃의 아픔이요, 이웃의 아픔은 곧 사회의 아픔이며 나아가서는 한 나라 전체의 아픔이고 결국 국민의 한 사람인 나의 아픔으로 돌아온다. 

 

5년이 지난 지금, 우리사회는 세월호의 아픈 기억을 통해 얼마나 성숙하고 있는가, 국가의 안전망 시스템은 얼마나 변화되고 있는가, 국민은 정녕 정부를 국가를 믿고 살아도 되는 것인가. 이제 더 이상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하며, 현관의 불빛으로 오던 수호의 어린 영혼에게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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