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아니의 발길 닿는대로>
군산 지역 주민과 어부들이 선호했던 어류(2)
조선총독부 통계연보(1938)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군산 앞바다 어장(고군산군도 근해, 금강)에서 잡히는 주요 어류는 조기, 복어, 상어, 민어, 홍어, 뱅어, 갈치, 게, 삼치, 대구, 청어, 새우, 숭어, 병치, 오징어, 가오리 등 35종에 달하였다. 그중 일본인은 값비싼 민어, 준치, 뱅어 등을 먹었고, 조선인은 흔하고 값싼 갈치, 숭어, 아귀 등을 먹었다.
준치는 진어(眞魚)로도 불리었다. 진어는 '참다운 물고기'라는 뜻으로 뱅어와 함께 금강에서 많이 잡혔다. 뱅어는 멸치처럼 통째로 먹었다. 준치는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맛이 좋았으나 살에 가시가 많은 게 흠이었다. 오죽했으면 일본인들이 ‘가시만 없으면 조센징 먹기는 아까운 생선’이라며 한국인을 비하할 때 빗대어 말했을까. 광복 후에는 ‘조센징’이 ‘촌놈’으로 바뀌어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1945~1961년까지 군산수협 공판장에서 위판한 주요 어종은 조기, 갯장어, 고등어, 서대, 병치, 농어, 도미, 갈치, 대구, 민어, 상어, 복어, 대하 등 22종이었다. 1964년 기록은 뱅어, 전어, 웅어 등이 추가되어 27종으로 늘었다. 1990년 통계는 강물 오염으로 뱅어가 사라지고, 주꾸미가 들어있어 눈길을 끈다. 그중 군산 지역 주민들이 즐겨 먹었던 조기, 아귀, 홍어, 상어, 대하, 갈치, 꽃게, 우럭, 물매기, 망둥이, 박대, 황석어 등을 소개한다.
한때 제사상에 올랐던 ‘상어’
상어는 상어목에 속하는 어류의 총칭이다. 몸통이 원뿔꼴이고, 가시가 없이 연골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각이 발달하였다. 상어는 다른 어류와 달리 태생(胎生)을 하며 우리나라 해역에 4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기는 6월~11월이고 어청도, 고군산군도, 제주도 앞바다 등이 주요 어장이었다.
요즘은 상어를 찾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60~70년대까지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오를 정도로 군산 사람들이 즐겨 먹던 생선이었다. 생선을 물로 씻어내고 적당하게 자르는 과정을 ‘손본다’, 혹은 ‘다룬다’고 한다. 그러나 상어는 ‘튀긴다’고 하였다. 칼로 비늘을 벗기는 일반 생선과 달리 뜨거운 물에 담가 껍질을 벗겨 내기 때문이었다.
상어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솥에 찌거나 부침개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렸다. 겉모양은 흉측스럽지만, 살코기가 목화솜처럼 뽀얗고 부드러우며 고소했다. 선조들이 상어를 제사상에 올리게 된 연유는 첫째,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것. 둘째, 쪄놓으면 ‘백의민족’이 즐겨 입는 옷과 살코기 색깔이 비슷하다는 것. 셋째, 기름기가 없고 담백하다는 것 등으로 알려진다.
흔히 상어를 얘기하면 거대한 ‘식인 백상아리’나 상어지느러미 요리(샥스핀)를 말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예전에는 어시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생선이었다. 다만, 다루기가 어렵고 복잡해서 대중 음식으로 자리를 못 잡지 않았나 싶다. 요즘도 상어가 제사용으로 인기가 좋은 경상도 부산, 마산, 대구, 울산 지역은 경매가가 항상 군산보다 높다고 한다.
조선 시대 진상품이었던 ‘대하’
대하(大蝦)는 보리새우과 갑각류로 개펄이 발달한 서해를 중심으로 남해 일부 해역에도 분포한다. 왕새우(대하)는 몸집이 큰 새우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군산 째보선창 사람들은 수컷을 ‘봉선화’라 칭하였다. 5~6월에 산란해서 완전히 성숙하면 암컷(25~30cm)이 수컷(15cm 안팎)보다 놀라울 정도로 크다. 암컷은 하얀색이 돋고, 수컷은 붉은빛을 띤다.
요즘엔 중남미산 흰다리새우, 에콰도르산 홍다리새우, 양식 보리새우 등이 대하로 팔리고 있는데, 흰다리새우는 대하와 흡사해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머리 위에 달린 뿔을 비교해보면 현격히 차이가 난다. 대하는 새끼도 수염이 자기 몸통보다 훨씬 길고, 뿔도 뾰쪽하다. 반면 흰다리새우는 수염이 짧고 뿔 길이도 뭉툭해서 쉽게 구별된다.
대하는 살이 통통하고 맛이 좋았다. 그래서 값이 비싸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새만금방조제 착공(1991년) 전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오식도, 비응도 등 군산 앞바다 섬 주민들이 대하잡이에 나섰다. 수온이 섭씨 10℃ 이상으로 올라가는 음력 3~4월에는 대하 산란기로 외역에서 회유하던 대하가 연안으로 모여들면서 어장이 조성됐다.
군산 미식가들은 대하탕은 국물이 시원해서 속풀이 음식으로, 대하찜은 술안주로 즐겨 먹었다. 대하탕에 들어가는 대하는 2~3마리 정도였으나 굵기가 아기 팔뚝만 해서 보기만 해도 포만감이 느껴졌다. 대하 애호가들은 대하잡이 현장으로 달려가 살아서 팔딱거리는 대하를 소금구이나 껍질을 손으로 벗겨 내고 초장에 찍어 소주를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봄에 잡히는 대하를 가마솥에 쪄서 살짝 건조한 다음 짚으로 굴비처럼 엮어 통풍이 잘되는 대청이나 곳간에 걸어놓았다가 입이 심심할 때 꺼내 먹었는데, 겨울철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도 군산(옥구)의 진상품으로 소개한 것을 보면 말리거나 훈제한 대하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민 밥상에 빠지지 않았던 ‘갈치’
갈치는 농어목 갈치과로 분류되며 열대, 온대 해역에 분포한다. 몸길이가 1. 5m에 달하고 먹이는 주로 갑각류이며 입은 매우 크고, 위턱의 뒤끝은 눈 뒤 가장자리에 미친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돌출되어 있으며, 양턱 앞에는 갈고리 모양의 강한 이빨이 나 있다. 어기는 5월~6월, 8월~10월이며 고군산군도, 연도, 어청도 근해가 주요 어장이었다.
갈치는 칼처럼 생겼다고 해서 도어(刀魚)로도 불린다. 제주의 은갈치와 목포의 먹갈치가 유명한데, 낚시로 잡으면 은갈치, 그물로 잡으면 먹갈치로 잡히는 방식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은갈치 빛깔은 은색이 선명하고, 먹갈치는 은색 바탕에 회갈색을 띤다. 낚시로 잡은 은갈치가 맛도 좋고 값도 비싼 것으로 알려진다.
생김새는 신경질적이고 사납게 생겼지만. 맛은 고소하기가 그만인 갈치는 흔한 편이어서 서민들 밥상에 단골로 올랐다. 그러나 어족자원이 고갈된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소금구이, 찜, 찌개 등 조리 방법도 다양하다. 그중 찌개는 가정에서 밥반찬으로, 소금구이나 감자와 무를 나박나박 썰어 넣은 얼큰한 갈치찜은 애주가들이 술안주로 즐겨 먹었다.
뱃사람들 사이에 ‘10월 갈치는 돼지 삼겹살보다 낫고, 은빛 비늘은 황소 값보다 비싸다!’는 속담이 회자할 정도로 갈치는 가을 생선으로 알려진다. 천고마비 계절에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다는 뜻이 되겠다. 군산 째보선창 주변 ‘젓탱크(젓당꼬)’에서 갈치 내장으로 담근 ‘갈치속젓’ 또한 별미로 여름 반찬으로 인기가 좋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