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기준
(남대진 ; 수필가, 청목하우징 대표. 군산사료총판 진우상회 공동대표. 시민·사회·환경 운동가)
이른바 진상 손님이 들어왔다. 어떤 경우든 친절해야 한다는 평소의 다짐은 곧 사라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님을 응대하는 말투가 퉁명스러워짐을 스스로 느낀다. 주인에게는 진상 손님이 악이지만 그 손님 입장에서는 퉁명스러운 주인이 악이다.
창조주는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심고 아담과 하와에게 절대로 이 과일을 따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창2:17).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창조주의 명령을 어기고 이 과일을 따 먹음으로 저주를 받고 에덴에서 추방된다.
그렇다면 이 과일이 대체 무엇이기에 유독 그것만은 안 된다는 것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흔히 우리가 “선악과”로 알고 있는 이 나무는, 사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이다. 즉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일을 먹으면 그 때부터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창조주의 영역에 사람이 들어왔다는 것이다(창3:22).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자신들도 선과 악을 구분하는 지혜를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내 주변에 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내가 악한 사람일 것이다.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을 보자. 자신과 경쟁하는 사람은 모두가 악이지 않은가? 나와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른 사람은 모두가 악한 사람이다. 같은 물건을 나보다 싸게 파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고, 다른 가게보다 싸게 팔면 내게는 그 주인이 선한 사람이 된다.
시장 통의 많은 상인들을 보면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별로 친하지 않다. 먼저 인사를 해도 외면한다. 얼마 전 옆에서 동일한 품목을 파는 가게가 수리를 마치고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축하한다며 화분 하나를 들고 갔으나 외면을 하고 인사도 받지 않았다. 한동안 많은 말을 하게 한 후에야 할 수 없이 그 가게 주인은 고맙다고 했다.
아마도 그에게는 내가 악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악한 사람으로 우리는 쉽게 구분해 버린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에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선과 악의 기준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