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시 옥색치마
몇 년 전 친구가 102세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80여 년 전쯤 혼수로 해 오셨다는 모시적삼과 모시 몇 마를 주었다. 복식을 연구한다고 하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태우지 않고 내 생각이 나서 가져왔다고 했다. 정갈한 성품을 느끼게 하는 보존이 잘된 유물이다.
모시는 저마라고도 하는데 열전도성이 높고 흡수성과 통기성이 좋아 주로 여름옷을 짓는데 사용한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에서 짜서 당나라에 수출한 특산물이라는 기록이 있다. 『성호사설』에는 우리나라에서 짠 한필의 모시베가 바리에 들어갈 정도로 고운 것이 있다고 하였다. 바리는 여자의 밥그릇이다. 모시 한필은 폭이 30cm내외에 길이 21.6m 인데 세모시인 바리 베는 얼마나 고와야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다.
모시를 수확해서 한필의 모시가 짜여 지기까지 태모시 만들기, 모시 째기, 모시삼기, 모시굿 만들기, 모시 날기, 모시 매기등 많은 공정이 필요하다. 태모시를 이로 물어 균일하고 가늘게 째다보면 이가 닳아 골이 파이는데 ‘이골이 난다’고 하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모시 짜기는 보통 6월 말 장마 때부터 시작해서 8월 처서 전까지 삼복 무더위에 찜통 같은 움막에서 짠다. 건조하거나 기온이 내려가면 실이 잘 끊어지므로 눅눅한 환경에서 짜야 한다.
농촌의 변화에 따라 모시 농사부터 모시매기까지 함께하던 공동체인 모시 두레가 거의 해체되었다. 전통방식의 고된 모시 짜기를 하는 사람도 줄었다. 우수한 기능성과 한산모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생산이 줄고 고가의 소재가 되어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콩가루로 만든 푸닛가루 대신 아교를 먹인 중국산 모시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내 어릴 적 어머니는 여름에 하얀 모시적삼과 옥색치마를 즐겨 입으셨다. 어머니의 옥색 치마를 만들 때 남은 자투리와 아버지의 모시 두루마기에서 나온 조각들과 언니 오빠의 옷에서 본 천 조각 들은 이어져 배를 덮는 이불이 되었다. 사진이 귀하던 시절에 마치 가족사진 같은 그 조각이불은 형제간의 정이고 가족의 추억이다. 더운 여름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까슬한 모시 치마꼬리를 손가락에 감고 깨물며 낮잠을 잣다. 부채로 모기를 쫒으며 자장가처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는 보름새 세모시를 짜서 당신의 수의를 해 입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요즘 퀼트를 하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럽에서 엔틱 리넨을 수입해서 작품의 소재로 사용 하는 게 유행이다. 고된 베 짜기를 달래기 위해 베틀가를 부르며 올올이 심었던 정과 한은 세월 속에 묻히고 유럽 어느 지방 할머니의 스토리가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다.
어머니의 조각보를 추억하며 나도 남편과 아이의 옷을 만들고 나면 남는 자투리에 애착을 가지고 모아두었다가 조각보를 만든다. 우리 아이들은 훗날 나의 조각보를 어떻게 추억할까?
오늘은 자투리를 모아 놓은 바구니를 뒤지며 햇살과 놀아줄 모시 발을 만들어야지...
이미숙
차림문화원 대표 복식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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