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명산동사거리가 분주해졌다. 도로가 넓어지고 신호대가 정비되더니 사람들의 왕래도 활발해졌다. 명산동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큰길 안쪽으로 있는 유곽시장만 해도 그렇다. 얼마 전까지 폐허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명산시장으로 이름도 바꾸고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지역상가의 재래시장으로 탈바꿈을 해서 노점상들까지 자리를 잡고 나섰다.
명산동이 분주 해진 것은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임해공단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굴다리가 월명 산 밑으로 뚫려서 차량통행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도 말하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인접한 월명동에 문화의 거리가 만들어지면서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부르기 좋게 명산동 사거리지 사실은 월명동 삼학동 명산동 중앙로가 모두 인접되어 있는 곳으로 구 도심권을 활성화 하려면 이곳부터 손을 대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몇 년 전부터 시청에서 정비를 한다고 하더니 드디어 인접 월명동부터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월명동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독차지해서 거주하던 곳이다. 아직도 일본인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곳에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일본인들이 살던 집이며 거리를 복원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다가 올림픽 메달을 주네 못주네 하는 판에 부끄러운 지도 모르고 일본인 관광유치가 무슨 뚱 단지 같은 소리냐고 비웃는 사람도 많지만 선거 때 구 도심권을 활성화 시키겠다는 공약으로 당선이 된 시장은 어쩔 수 없는 일 일 것이다.
사실 이곳 군산 항구는 일제 36년 동안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서 실어가려고 일본인들이 몰려들어 제나라처럼 흥청거렸던 곳이기 때문에 도시 계획자체가 저희들 맘먹은 대로였다.
지금은 명산시장으로 불리지만 그때는 홍등가 유곽이 불야성을 이루었고 주변도 화려했다. 그 유곽 때문에 지금도 명산 시장을 유곽골 시장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유곽이 무엇인가?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공창이다. 밤이면 빨간 등이 화려하게 켜진 홍등가는 수많은 창녀들이 유객을 하던 곳으로 밤 낯을 모르고 술과 도박으로 흥청대던 곳이다.
제 놈들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는 유흥가를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법도 무시하고 인근에 중국인 화교 학교도 있었고 유곽에서 100m 떨어지지 않은 골목길에 일본식건축법으로 부처님을 모신 동국사라는 절까지 지어놓았다.
지금의 군산에는 유곽이 아니라 사창가며 홍등까지 흔적도 없어졌지만 일본인들의 잔재는 아직도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동국사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쓰루스 가옥이며 소위말해서 ‘나가야’ 라고 하는 일본식 건축물인 개인 주택들이 원형대로 남아있어 심심치 않은 이야기 꺼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요즈음은 동국사 가는 길이라고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의 거리를 조성하고 있어서 외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기웃거려보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항구 군산은 아름다운 도시다. 나폴리나 시드니처럼 맑은 물에 아름다운 해변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대신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금강하구 둑이 있고 그림 같은 월명산이 있다. 산과 바다 그리고 강까지 어울려 절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민선시장이야 당연히 관광도시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일본식 건축물 ‘나가야’를 살리고 복원해서 일본인들의 향수를 불러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코웃음을 쳤다. 차이나타운을 만들어서 중국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씨 뽑아먹고 말일이지 약아빠진 일본인들의 주머니에서 무슨 수로 엔화를 꺼내겠다고 혈세를 낭비하느냐는 비웃음이었다.
결과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8.15 해방 후에 침략자 일본인 잔재를 없애겠다고 공원마다 설치되었던 신사를 때려 부수고 난리를 칠 때가 바로 어제였다. 아무리 경제가 우선이라지만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다시 망령을 부리는 일본인 관광객까지 불러들여 잔돈푼 얻어먹고 살겠다고 하는 것이냐? 부끄러운 줄이나 알아야 한다고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구도심 활성화도 좋지만 아무래도 일본인 거리를 복원하겠다는 것은 나이를 먹은 시민들에게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일본인 거리를 복원하자면 어찌 ‘나가야’야집 뿐일까?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조화(朝化)라는 일본양조장도 명산동 사거리 근처에 있었다. 해방이 되고나서 이름이 백화로 바뀌어 3.15부정선거판까지 술을 취하게 만들어서 부정선거의 축을 이루게 했던 우리나라 최대의 정종공장이었다.
술 공장에 유곽골 시장까지 복원하면 어떨까? 홍등가 유곽까지 확실하게 복원을 해서 옛날의 흥청대던 군산을 다시 만들자. 명산 시장 번영회장 김병구가 꿈꾸어 오던 세상이다.
‘일본관광객 환영,’
“뭐야?”
“또 쪽발이 세상이 오는 거냐?”
사거리 빨간불 신호에 걸려 대기하고 있던 나이 먹은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허탈해 하고 있었다.
“병구 놈 짓이구먼.”
“퉤!”
시의원님 자제분이 서울변두리 대학에 붙었다고 현수막을 달아놓고 축하를 해대는 판이다. 까짓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현수막하나쯤 걸어놓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이유야 어떻게 되었던 이제 환영 현수막까지 걸어놓은 것을 보면 언제부터 인가 일본인 관광객들이 들락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한일 수교가 성립 된지가 언제인데 일본관광객을 거절하겠냐고 하겠지만 알만 한 사람들은 명산 시장에서 일명 가내야마로 통하는 김병구 때문에 고개를 돌리고 침을 뱉고 있었다. 김병구가 누구인가? 유곽시장 번영회 회장님이시다.
명산 시장의 동편에 벽돌로 지어진 낡은 건물이 있다. 이층으로 아래층은 김치찌개 식당이고 좁은 계단으로 올라서면 다섯 평쯤의 사무실 입구에 번영회 사무실 간판이 보인다. 들어서면 작은 책상이 두 개가 보이고 뒤쪽으로 회전의자에 회장님 책상이 있다.
직원은 두 사람이다. 회장이 이름대신 오가로 불러대는 80이 다된 늙다리 심부름꾼에 굳이 비서라고 주장하는 사환 박 양이다. 이상한 것은 말뿐이지 정식으로 번영회를 발족을 한 적도 없고 시장사람 누구도 회원이라고 가입한 사실이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회비를 내는 사람도 없고 회비를 받아야겠다고 나서는 직원도 없다. 그렇다보니 관리비도 인권비도 정식으로 지출되는 게 없다.
“번영회 좋아 하시네.”
나이 먹은 시장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김병구가 감투를 쓰려고 저 혼자서 번영회를 만들어서 시키지도 않은 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시비를 하는 사람이 없다. 사실은 간판 뒤에 숨겨 둔 것이 돈 장사기 때문이다. 병구가 주장하는 데로라면 금융업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장 노점상들에게 일수 돈놀이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회장님의 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번영회운운 해서 사칭을 해도 시비를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